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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l 28. 2021

딸을 위해 다시 쓰는 엄지공주 #2.

딸아, 아직까지는 재미있...니? 아슬아슬한?

  크고 둥그런 눈에 가로로 길쭉한 눈동자. 언뜻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졸린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사냥할 때는 번개같이 빠르다.     


  어둡고 축축한 그림자의 정체는 두꺼비였다. 바위틈으로 발을 뻗어 침낭째로 소녀를 움켜쥐고 펄쩍펄쩍 둑길을 달려 시냇가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소녀는 깜짝 놀랐지만 울지 않았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소녀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손해임을 알고 있었다.     


  두꺼비가 소녀를 한 입에 삼키지 않은 이유는 결혼할 나이가 훨씬 지난 아들 때문이었다. 어미만큼 크고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아들 두꺼비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가뭄으로 말라 가는 시냇가에서는 아들 두꺼비가 살만한 신혼집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어미 두꺼비는 아들 앞에 소녀가 들어 있는 튤립 침낭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헌 집을 주면 새 집을 준다고 알려진 동물답게 엄마 두꺼비는 집 짓기의 명수였다. 스스로 결혼도 못하고 집도 못 얻는 아들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얘야, 큰 소리 내지 마라. 이 아이 깨겠다. 저기 시냇물 안 넓은 수련 잎 안에 가둬두자꾸나. 이 아이는 하도 작고 가벼워서 거기서 절대 나오지 못할 게다. 그 사이에 나는 너희 둘이 지낼 진흙 구덩이 집을 만들면 되는 거야. 너는 나만 믿으면 된단다.”     


  두꺼비 아들은 엄마의 명령대로 소녀를 메고 가서 시냇가 한가운데 있는 연잎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소녀는 침낭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음성으로 두꺼비 아들을 불렀다.     


  “저기, 두꺼비 씨.”     


  두꺼비는 깜짝 놀라서 소녀에게 돌아왔다. 큰 눈망울을 두룩두룩 굴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두꺼비에게 소녀는 말을 이어 갔다. 사실은 화가 나서 장미 가시가 달린 신발로 걷어차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떨지 않고 말했다.     


  “저는 연잎을 타고 여행 중이었어요. 그리고 에메랄드 빛 호수에서 수영 연습도 많이 했답니다. 여기에 저를 가둘 수는 없어요.”     


  두꺼비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입을 뻐끔거리고 그르륵 거릴 뿐이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저에게 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에요. 제가 작다고 해서 저를 마음대로 한다면, 두꺼비 씨의 결혼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사랑은 억지로 할 수 없어요.”     


  소녀는 깊고 지혜로운 눈빛으로 두꺼비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두꺼비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비치는 것도 같았다.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라도,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마세요. 결혼은 두꺼비 씨가 하는 거지 엄마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두꺼비는 이윽고 들릴 듯 말 듯하게 어려운 한 마디를 꺼냈다. 큰 눈망울에서는 금방이라도 또르륵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았다.     


  “그르륵... 미.. 안... 해요. 그르륵...”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이 세상 모든 꽃의 아름다움을 다 담은 듯한 환한 미소를 두꺼비에게 선물하며 칭찬해 주었다.     


  “멋져요.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 중에 하나인데, 그 말을 꼭 잊지 마세요. 바른 마음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누군가는 두꺼비 씨의 진심을 알아줄 거예요.”     


  두꺼비는 멋쩍게 웃으며 소녀를 전송해 주었다. 고마움을 담아 연잎으로 새 배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녀는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말을 해낸 진흙투성이 두꺼비를 꼭 껴안아주었다. 진흙이 옷에 조금 묻었지만 소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는 시냇물에 빨아 툭툭 털어 입으면 될터였다.      


  시냇가는 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물은 흐른다. 소녀를 태운 연잎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두꺼비는 그 길로 어미 두꺼비에게 돌아가 작은 친구에게 배운 대로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르륵... 어머니...”     


  그리고 며칠 후, 어미 두꺼비가 짓던 진흙집이 무너졌다. 아들 두꺼비는 조금 더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웃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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