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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l 28. 2021

딸을 위해 다시 쓰는 엄지공주 #3.

동화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내가 이걸 왜 시작해서...ㅠ

  나비가 날아왔다.     


  만약 나비가 없었다면 많은 꽃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꽃을 닮은 소녀의 모습에 감탄하며 나비는 소녀가 탄 연잎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새들은 입을 모아 소녀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나비가 배를 끌어준다면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겠지만, 소녀는 나비의 날개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이름을 찾는 여행에 속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때였다. 너무 느려서였을까? 쏜살같이 비행하던 커다란 왕풍뎅이 한 마리가 소녀를 흘끗 보더니,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낚아채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큰 나뭇잎 위에 앉혀두었다.     


  이제 소녀는 안다. 여행에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있다는 사실을. 소녀는 두꺼비에게 했던 것처럼 무언가 말해보려고 했지만, 풍뎅이의 날갯짓 소리가 너무 커서 그녀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장미 가시가 달린 신발로 걷어차 볼까 생각도 했지만, 풍뎅이의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소녀는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왕풍뎅이는 소녀를 해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붕붕거리는 날개 소리 사이사이 풍뎅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풍뎅이들은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듣기 싫으면 날갯짓을 붕붕 하며 윙윙 날아가버리면 그만이지. 그런데 너는 풍뎅이들과는 다르게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참 예쁘구나.”     


  소녀는 높은 산에 올라가 본 적은 있지만, 위태로운 나뭇잎 위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풍뎅이의 날개에서 나오는 바람과 소리에 견디기 힘들었지만, 혹시 떨어질까 조심조심하며 상황을 살피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소녀를 잡아온 풍뎅이는 인기가 좋은 멋쟁이였다. 자세히 보니 검은 등껍질에 햇살이 비추면 황금빛과 푸른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멋진 빛깔에 취해 왕풍뎅이를 찾아온 암컷 풍뎅이들은 불청객인 소녀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저 괴물은 다리가 네 개뿐이잖아? 앞다리는 쓸모도 없겠군.”

  “더듬이도 없어. 머리에 붙은 저 치렁치렁한 보라색 털은 뭐지?”

  “그런데 몸이 저렇게 가늘어서야... 우리가 날갯짓 한번 하면 여기서 그냥 떨어져 버리겠군?”     


  암컷 풍뎅이들은 소녀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많은 목소리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풍뎅이들의 말 때문에 소녀의 마음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심지어 자기 모습이 괴물처럼 변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기를 여러 날, 어느 날 아침 소녀는 잎사귀 위 이슬방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아이리스를 닮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변함없는데 꽃들과 새들은 예쁘다고 하고, 풍뎅이들은 못 생겼다고 하는구나. 저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거였어.’     


  소녀는 다시 마음이 살아나고, 식었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예쁘다는 말에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고, 못생겼다는 말에 너무 상처 받을 필요도 없구나. 오늘도 나는 그대로니까.’     


  소녀는 드디어 입을 열어 재잘거리는 암컷 풍뎅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풍뎅이 언니들, 잠깐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     


  풍뎅이들은 날갯짓과 험담을 멈추었다. 입을 다물고 있었던 시간이 길었기에, 소녀가 한 마디 했을 때 다들 듣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모두 검은 것 같지만, 다 다르네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언니도 있고, 푸른빛으로 빛나는 언니도 있어요. 에메랄드 빛, 주홍 빛, 초록빛 모두 멋진 색깔들이에요.”
 

  소녀가 칭찬하자 암컷 풍뎅이들은 저마다 기분이 좋아져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풍뎅이들은 평소에 전부 새까맣다고 서로 싫어하기만 했는데, 난생처음으로 자기들의 색깔을 알아봐 준 소녀의 말에 다들 행복해졌다.     


  그러나 풍뎅이들의 날개에서 시작된 세찬 바람에 그만 소녀는 나뭇잎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에게는 그냥 보통 나무지만, 소녀에게는 마치 에펠탑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두려움에 소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정신을 잃어버렸다. 진짜 이름을 찾지도 못한 채, 여행은 여기서 끝날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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