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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n 11. 2021

딸에게 들려주는 좋은 남자 감별법

사랑하는 딸아, '빠른 인정'을 할 줄 아는 사람과 만나거라

  사진의 아이는 6년 전의 제 딸입니다. 저는 딸아이 자는 모습을 보며, '이 예쁜 걸 어떻게 보내나.' 하며 생기지도 않은 딸의 남자 친구를 증오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팔불출 아빠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 딸이 누군가 남자사람ㅅㄲ(어머나 실수 데헷)를 만날 때 이 글을 보며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좋은 남자 고르는 법'에 대해 좀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무슨 병아리 감별이나 택배 물건 시키는 것과는 다르지만, 아직 결혼하기 전이라면 기회가 있으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소위 '좋은 남자'는 아니지만 20년 후를 대비할 줄 아는 아빠이고 싶습니다.




  우선 흔히 말하는 기준들은 성격, 외모, 재력, 학력 등인 것 같습니다. 외모는 내 마음에 들면 되고, 사실 다른 조건이 맞는다면 어느 정도 허용 범위가 넓어지는 조건이므로 패스. 재력이 제일 중요한 것 같긴 한데, 제 딸이 결혼 적령기(그때에도 그런 게 있을까요?)에 가질 수 있는 재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패스. 괜히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부자랑 결혼하면 고생한다 얘야. 학력도 같은 이유로 패스.


  결국 성격입니다. 그런데 성격은 사람을 꽤 오랜 시간 겪어도 다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많은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데 익숙하고,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라이프스타일로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 기준)


  도덕적 기준이 높은 사람일 경우, 결혼해 보면 생각보다 같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나름 괜찮은 사람이지만, 자기 모습에도 분명히 단점이 있으면서 타인의 잘못을 더 잘 보는 이상한 특기가 함께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성격'이라는 기준을 막연하게 생각하면 결혼하고 나서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격 좋은, 즉 함께 살기 좋은 남자의 덕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점은 '빠른 인정'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을 맞춰 보며 들었다 놨다 하다가, 정작 결혼은 마음이 끌리지 않아서 선뜻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많은 대화를 하게 되는데요, 그때 잘 관찰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자기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할 줄 아는 남자는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똑똑한 남자보다 훨씬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미안해."라는 말을 위기 상황 모면을 위한 도구로 쓰지 않고 자기 변화와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삼는 남자는 좋은 남자입니다.


  성격이 급하거나 불 같아서 갈등 상황에서는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착한 남자를 만나도 그 속에는 야수가 몇 마리 들어있는지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화를 내더라도, 자기가 감정적이 되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정중하게 대화를 청할 줄 아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 '빠른 인정'의 덕목은 곧 '갈등 해결 능력'과 직결됩니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변화에 열린 자세로 비교적 빠르게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0년, 20년을 살아도 인간적인 성숙도가 그대로인 사람이 있고, 이 '빠른 인정'을 통해 매력적인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은 단타가 아니라 장투입니다. 장투는 현재 잠깐의 호재를 따라 하면 망합니다. 장기적인 발전 가능성을 보셔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감정의 끌림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긴 시간 속에서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도 할 줄 알고, 고마움도 곧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행하게도, 제 장인어른의 큰 따님은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고집불통 삐돌이'를 만나서 지난 10년간 고생도 많이 했지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알기는 기똥차게 알면서 사는 것은 그보다 못했던 고집불통 삐돌이'는 이제 큰 딸을 향한 편지 같은 글을 씁니다.


  딸아. '빠른 인정' 스킬을 가진 남자를 만나거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 작은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줄 알고 그것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 변변찮아 보일지라도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란다. 그리고 먼 훗날 네 눈에 그런 남자가 스탠더드가 될 수 있도록, 고집불통 삐돌이 아빠도 조금씩 변해 볼게. 사랑한다. 딸아.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고 사랑해 여보. 언제나 내 글의 주제는 결론에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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