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없는 채송화 언니의 말을 들어보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입니다. 이혼한 전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는 여사친 채송화에게 석형은 담담히 자기가 했던 노력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나 노력한 것 맞지?"
"아니.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니. 그건 노력한 게 아니라 회피한 거지. 너 아무것도 안 한 거야."
"모른 척해주지 말고, 생각만 하지 말고, 싸우더라도 물어봤어야지. 그게 노력이야."
"... 넌 참 어떻게 모르는 게 없니. 나도 알아. 사실 나도 내가 문제인 것 잘 알거든."
문제점을 파악한 채송화는 해결책을 줍니다.
"닥치고 한 가지만 해. 말을 많이 해."
"나 할 말은 하는데? 필요한 말은 다 하는데?"
"쓸데없는 말을 해야지! 할 말만 하는 건 일이고, 쓸데없는 말을 하라고. 네가 생각하기에 쓸데없는 말이라도, 그게 쓸데없는 말이 아닐 거야."
이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담담히 풀어내는 대화 중 뼈가 있고 삶의 디테일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외아들인 석형은 필요한 말은 꼭 하지만, 곤란한 대화는 회피하곤 했습니다. '아들'과 '돈'에 꽂혀 있는 시어머니와 와이프의 극심한 고부 갈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웠겠지요.
저도 외아들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 사람이 적으니, 회화의 빈도수와 다양성이 떨어질 수밖에요. 필요한 말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쓸데없는 말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의사 선생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격무에 시달렸고, 집에 늦게 와서 일찍 출근했습니다. 당연히 탈탈 털려서 집에 온 날에는 아내에게 할 말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았어요.
아, 그때 이 드라마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때 필요한 말은 "쓸데없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 역시 아빠 엄마가 드라마를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드라마를 봐야 인생을 알게 돼.
사실 저는 '쓸데없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엄청나게 혼났고, 부모님께도 욕 많이 들어먹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 하지 말아라."는 제 인생의 율법과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쓸데없는 말을 덜 하니까 대외 이미지도 좋아지더라고요. (4학년 때는 입 다물고 있으니 아이들이 반장을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변명은 이 정도로 하고, 아내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만난 지 6개월 된 남자(아직 어떤 인간인지 잘 모름.)와 덜렁 이사 온 동네에 친구도 하나 없고, 허니문 베이베는 무럭무럭 자라며 신체와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같이 사는 법을 연습하고 마음을 나눠야 할 유일한 인간은 대부분 자고 있을 때 나가서 잠들기 직전에 들어왔습니다. 그나마 쉬는 날에는 잠만 퍼 자구요.
'참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시키는 일만 하던 시절이라,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서, 밖에서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는 건 당연하게 여겼지요.
사실은 거꾸로 사는 게 맞다는 진리를 결혼 10년 차쯤 되니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일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의 행복(자신 포함)을 위해 일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주어진 시간에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며 성실하게 일해야 가능하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관계를 조금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게 결혼한 사람의 당연한 길이더라고요. 특별히 신혼 시절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름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고 있는데 엉뚱한 지점에서 문제가 뻥뻥 터지니 억울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점점 쓸데없는 말보다는 지지 않는 말, 효과적으로 상처 주는 말을 서로에게 하게 됐지요.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현실 왜곡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없었던 일도 기억 속에 만들어 내서 우기면 실제가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결혼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보면서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 누군가 동네 형이나 누나가 채송화 언니처럼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오해와 왜곡된 기억을 쌓아봤자 서로에게 더 큰 상처가 될 뿐입니다. '할많하않'은 적어도 신혼 시절에는 배려가 아닙니다.
'이런 걸 꼭 말해야 알아?' 하면서 똥 자존심을 부리다가 결국 폭탄처럼 터지고, 이상한 사람 되기 십상입니다. 그냥 좀 서툴더라도, 정리 안된 쓸데없는 말을 하다가 시원하게 한판 붙고 잘 푸는 게 지혜롭습니다. (원래 애들은 적절히 싸워줘야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부부의 참사랑은 갈등이 없는 사랑이 아니라, 갈등을 슬기롭게 풀 줄 아는 사랑이니까요.
가끔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부부님들을 만납니다. 존경의 마음이 드는 한편, '저 자랑을 하기 위해 한쪽이 얼마나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까?' '저분들은 어디서 줄줄 새고 있을까?'라고 속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보통 새는 게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부는 자기도 모르는 데서 새고 있을 가능성이 높더라고요. 제법 겪어 본 임상 결과입니다.
부부 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복싱과 같습니다. 안 싸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반드시 둘 다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야 하고, 결국 무승부를 이끌어내야 하는 고도의 승부조작(?)과도 같습니다. 그러려면 기를 모아서 원펀치 쓰리강냉이를 털면 안 되고, 자잘한 잽을 날리며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하면 됩니다. 가끔 끈적끈적한 클린치(양 선수가 서로 껴안고 있는 상태)는 기본입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얘기도 '쓸데없는 말' 중에 하나일지 모릅니다. 이제 조금 사람다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여보, 오늘도 쓸데없는 얘기 많이 하자. 타박 안 하고 쓸데없는 얘기 많이 들어줄게. ㅅㄹ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