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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l 21. 2021

오전 10시에 수영하고 브런치 먹는 상위 1% 남편

육아 대디도 생각보다 나쁜 것만은 아니야

  수영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호흡이란다. 폐 속에 공기를 전부 뱉어야 다시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들숨은 물 밖에서 빠르게, 날숨은 물속에서 천천히'이다. 산소가 충분하지 않으면 근육은 금방 피로해지고 결국 폼이 흐트러지면서 에너지를 쓰는 만큼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사는 것도 비슷하지 싶다. 숨을 좀 쉬어야 살고 글도 쓴다.




  갑자기 터진 수도권 4단계 거리두기로 두 아이는 온라인 집콕. 그냥 집콕이면 놀라고 내버려 두겠는데 온라인 수업을 한단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는 알겠지만, 초등 저학년의 온라인 수업은 사실상 부모 수업이다. (우리 애는 잘하는데...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루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거나 "오늘 뭐 배웠니?"라고 물어보면 알게 된다.)


  아폴로 우주선 발사 준비를 하는 심정으로 방학까지 카운트를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나는 할 것 다 했으니 만화를 보겠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둘째와 씨름하며 쉬는 시간에 편 만화책에 퐁당 빠져 수업 시작한 줄도 모르는 첫째에게 잔소리 한 바가지를 날린다. '초등학교 때는 놀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옛날이여.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몸무게가 0.1t에 육박하고 있었다. 결혼 10년 동안 얻은 것은 35kg에 달하는 두터운 인격이다. 3년 전까지 수영을 했는데 수영은 살 빠지는 운동은 아니었다. 투덜투덜거리면서 수영을 했는데 그만두니까 바로 찌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아 수영. 고마웠어요. 그땐 몰랐지만.


  큰 맘먹고 단지 뒤 스포츠센터에 강습 등록을 했다. 백신 접종자는 50% 할인이다. 야호. 항공기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먼저 보호자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그다음에 어린이에게 채워야 하는 법이란다. 얘들아, 아빠가 살아야 너희도 사는 거란다. 음음. 그렇고 말고.


  하는 생각으로 오전 10시 타임을 끊었다. (사실 빈자리가 그 시간밖에 없었다.) 평생 처음이다 오전 10시에 운동은. 첫 강습에 나갔는데 참가 인원 2명. 월 27,500원짜리 개인 레슨이다. 고 3 때 친구랑 월 3만 원 내고 둘이 인기 없는 단과반 선생님께 개인 지도받았던(수강생이 없어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때 현대시 200편 정도 떼었는데 수능 보는 날에는 주르륵 미끄러졌지 아마. 별 게 다 기억이 나서 피곤하게 만드네.


  어푸어푸. 사는 것도 힘든데 운동까지 이리 힘들게 해야 하나 싶어서 그만두었던 수영의 세계로 다시 들어오니 데자뷔 현상이 일어났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1+1 게X레이 레몬라임향 두 병을 들이켜고서야 정신이 좀 든다. 나 저 향 안 좋아하는데 1+1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주부의 손이라 어쩔 수 없다.


  집에 와선 어제 아들이 슈크림이 잡숫고 싶으시다고 해서 밤 10시에 분리수거 하고 빵집 가는 길에 사다 놓은 리코타 취즈 앤 취킨 샐러드로 브런치(!)를 먹는다. 나는 뒤끝 있는 부모지만 천사같은 아이들은 고이 수업 중. 우리 아가들 많이 컸다. 고맙다.




  다시 수영으로 돌아와서, 숨을 충분히 못 쉬는 이유는 단순하다. 날숨을 다 뱉어버리면 꼬르륵 가라앉을까 봐서. 물 먹을까 봐서. 빠져 죽을까 봐서. 그래서 폐의 50% 정도에 헌 숨을 고이 담아둔 채 나머지 50%만 쓰면서 헐떡 고개를 넘듯 헤엄을 친다. 열심히는 하는데 나가질 않아서 억울하다.


  그런데 사실 헌 숨을 다 뱉고 새 숨을 채워야 계속 갈 수 있다. 죽을 것 같지만 그래야 산다. 그리고 오래가는 사람이 된다.


  꾸준히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가는 관계를 맺고 싶다. 골골 헐떡 허우적 말고 건강하게.


  다 해어진 수영복을 보더니 아내가 10만 원짜리 수영복을 사 왔다. 물안경도 딱 보니 비싸 보인다. 본능적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아니, 27,500원짜리 수영을 다니면서 장비는 무슨 도쿄 올림픽 나가? 박태환이야?" 아내는 쿨하게 받아넘긴다. "돈 생기겠지. 걱정 마."


  항상 생각하지만 '고마워.'라고 말하면 되는데 진짜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고마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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