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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ug 05. 2021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세요?

너에게도, 나에게도 가끔 물어봐줘야 하는 질문

  "지금(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직업 특성상 가끔 하게 되는 질문이에요. 열 분 중의 아홉 분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세요.


  "요즘, 아무개가..."

  "지금 이런 문제가 있는데..."

  "제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인데...


  저는 언제쯤 '마음' 이야기를 하실지 목 빼고 기다리지만, 결국 '마음이 어떤지'는 나오지 않아요.


  "기뻐요." "슬퍼요." "힘들어요." "아파요." "화가 나요." "짜증이 나요." 우리말에는 마음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수천 가지는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는 것도, 내 마음이 어떤지 말하는 것도 어색한 문화에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몸으로 말해요. 호이.>



  

  결혼 초, 저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어른이'였어요. 예를 들어 화가 났는데, 화가 났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왜 화가 났는지도 말하지 않아요. (그 대신 전파를 쏘아요. 뿅뿅. 물론 화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한 건 없다.'라고 스스로 굳게 믿어요. 이런 남자랑 살면 답답해 죽어요.)


  시인 하청호 님의 '아버지의 등'이라는 시를 좋아했어요. '아버지는 등으로 말하고 등으로 운다.'는 내용의 시인데, 우리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 그런데 이 시대의 남편과 아버지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이 문장은 심순덕 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의 패러디예요.) 왜 멀쩡한 입 놔두고 등으로 말해요.


  저는 남중, 남고, 공대 (거의 남대)와 남자가 95% 이상인 대학원까지 졸업한 남성이에요. 의사소통은 최대한 효율적이고 간단히.


  그 옛날 '스타'를 해도 그랬어요. 급한데 '1시의 저그가 5시에 있는 테란, 너를 노리고 있어. 많이 걱정된다. 조심해. 내가 곧 도우러 갈게. 탱크를 뽑아서 최대한 막아봐.' 이렇게 치고 있으면 어느새 우리 편은 다 죽어서 GG를 치고 말아요.


  '1시' '조ㅅ미(조심을 치다가 실수)' '중앙' 뭐 이런 식으로 소통해요. 그리고 남자들은 다 알아들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도 '밥'하면 시계탑 앞에 집결해요. 안 오는 사람은 두고 가요.


  아무래도 남성이 여성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더 서투르다는 것을 이제 알아요.(무조건 그런 건 아니고 개인차는 있어요.) 그런데 요즘 세대는 점점 스타 하듯이 의사소통을 해요. '별다줄'의 시대예요.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아요. 마음이 어떤지 말하는 걸 어색해해요.




  그래서 요즘은 연습을 해요. '여보, 오늘 마음이 어때?' '○○이는 마음이 어때?' 다행히 제 아내와 아이들은 마음이 어떤지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에요. 아내는 저랑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좋아서 결혼한 사람이에요. 외모는 1도 안 봤대요. 그래서 종종 섭섭해요. 이런 마음은 또 표현이 잘 되네요. 호호.


  외모는 1도 안 본 남자와 붕어빵으로 태어난 아들(6)은 기분이 좋으면 춤을 춰요(저는 뒤끝 있는 남자예요. 아주 오래 기억해요. 흐흐.). 맛있는 걸 먹어도 자동으로 울라울라 춤이 나와요.

    <비 오는 날 우비를 벗어던지면 흥이라는 것이 폭발해요>


  아빠를 닮게 태어났지만, 다행히 아빠보다 훨씬 예쁜(?) 딸(10)은 그림이나 만들기 작품, 글로도 제법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해요.

     <산에는 잘 가지도 않는데 시는 잘도 써요. 가상현실?>


  그리고 깨달아요. 마음을 묻고, 마음이 어떤지 말하면서 살려면, 너무 바쁘면 안 돼요. 여행을 떠나거나 방학이라도 해야 물을 수도 있게 되고, 말할 수도 있게 돼요. 마음이 어떤지를. 공부할 게 많으면 아이들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을 겨를이 없어요. 밤 11시까지 공부를 하고 공부를 시켜야 하니까요.


  성경을 보면,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를 지 맘대로 집에 초대해 놓고 여동생(마리아)이 안 거들어 주니까 화를 내는 이야기가 나와요. 마르다는 손님도 대접할 줄 알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나와요.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바빴다."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런데 농땡이 부리는 동생에게 가서 '얘, 바쁜 거 안 보이니? 언니 좀 도와줄래.' 하면 될 것을, 설교하는 예수에게 다짜고짜 가서 '예수님, 지금 저 힘든 거 안 보여요? 내 동생한테 가서 언니 좀 도와주라고 말쫌 해주실래요?'라고 말해요. 동생하고 사이가 안 좋았나 봐요.


  그런데 손님 대접은 어디다 팔아먹었어요? 아마 '갑분싸'가 됐을 거예요. 분위기 어쩔.


  그런데 예수는 마르다에게 말해요. "마르다야. 일이 (가짓수가) 너무 많네.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 가지만 하면 어떠니?" 이 말을 번역하면, "마르다야, 걍 라면이나 끓여 먹고 동생 미워하지 말자. 나 잡채 안 먹어도 돼. 설거지 내가 이따 할 테니까, 너도 그냥 일루 와서 나랑 얘기나 하자." 그런 뜻이에요.


  나와 너에게 수시로 마음을 묻지 않으면 주객이 전도돼요. 뭘 위해서 사는지 길을 잃어버려요. 보통 아픈 마음과 깨어진 관계가 대가로 돌아오곤 해요.

 



  그래서 나에게도 가끔 물어봐 주세요. '마음이 어떠니?' 이런 건 아무데서나 되지 않아요. 어디 숲에 가든지, 길을 걷든지, 멍 때리기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든지 해야 돼요. 혼자서 개최하고 혼자서 참가하면 내가 세계 1위 금메달이에요. 예이~.


  커피도 그래서 마셔요. 뭘 하면서 마시기도 하지만, 뭐 마실 게 들어가야 생각이라는 것도 하고 대화라는 것도 할 수 있어서. 뜨거운 건 빨리 못 마시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물을 때는 따뜻한 커피를 마셔요.


  저는 지금 가족들과 휴가 중인데, 시간 아깝다고 첫날부터 가족들과 일정을 바쁘게 달렸다가 급성 편도염이 왔어요. 목이 퉁퉁 붓고 열이 펄펄 나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끙끙 앓아누워서 결국 48시간 정도 손해를 봤어요.


  마음을 묻지 않고 바쁘게 살다 보면 몸이 대답하나 봐요. 나 아프다고.


  오늘 아침에 열이 좀 내려서 마음을 물을 시간이 생겼어요. 부드럽게 물어요.


  '사랑하는 나야, 많이 아팠지? 오늘은 마음이 어떠니?'


  '아, 오늘은 말이야, 아침에 글 좀 써야 하고, 몸이 좀 나았으니 밀린 일도 약간 해야 하고, 1시부터 ZOOM미팅이 있어. 휴가지만 한 달 전에 잡은 거라 해야 돼. 그래서 가족들이랑은 4시부터 6시까지만 보낼 수 있고...'


  OMG. 이게 아닌데. 다 지우고 다시 써야 할까 봐요. 일단 컴퓨터 앞을 떠나렵니다. 깨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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