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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Sep 12. 2022

공무원 시험은 포기했지만 잘 지냅니다.

EP0. 시험이 망했지 내가 망했냐

  한여름에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앉아 내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고, 1년 차에 떨어져서 재도전을 했고, 2년 차에 시험을 보고 또 떨어져서 국가직 시험을 포기하고 지방직 시험을 봤다는 이야기. 시험에 떨어지자 직렬을 바꾸면서까지 내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야 하나 싶어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고 부모님께 '시험 포기' 의사를 밝히자 '끈기가 없다'며 핀잔만 들은 이야기. 결국 3년 차 시험을 준비하다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못 이겨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으러 간 이야기. 지금은 약을 끊고 잘 지내고 있는 이야기.


  정신과 상담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심 두려웠다. 친구들에게 내 약점을 구태여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내가 이런 걱정들을 이야기하자 돌아온 친구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요즘은 상담치료 안 받는 사람이 드물 걸. 2030의 대부분이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과 상담받는 사람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딱 자기 자신한테 손가락질하는 격이라니까.'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보니 내 흠은 별로 흠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험에 떨어져서 포기한 것이든,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파했든. 이런 일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드러내기 싫어할 뿐이었다.


  공무원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들은 많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하고 퇴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이야기들이나.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잘 지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어 나는 도서관에 있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나는 실패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내게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아니었고 친구들 역시 자신들의 불안정한 미래에 초조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도 잘 지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실패 그 너머의 이야기다.


  작년 11월부터 나의 위태로운 방황이 시작됐다. 공무원 시험 3년쯤 준비하면 너도 붙을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 아빠 앞에서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너무나 지쳐버렸다고. 이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달리는 것에 취해 다리 근육에 경련이 오는지도 모르고 숨차게 뛰고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며 보람차기는커녕 자기 연민만 깊어졌다.


  약 9개월의 방황을 겪은 지금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좌절에서 숨 쉬는 법부터 배웠다. 그리고 열심히 방황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누군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달리면서도 틈틈이 쉬어야 하고 때로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구태여 ‘힘든’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필요 없는 취준 생활과 수험생활이 코로나 시기가 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노력하면 뭐든 잘 될 것이며 시간이 뭐든지 해결해 줄 거라는 노랫말은 우리에게 불러주고 싶지 않다. 성공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 차례 좌절을 하며 알게 된 건 우리는 ‘우리’ 일 수만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나일 수만 있어도 우리는 사소한 것에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친절해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친절하지 않아 우리는 타인에게마저 친절하지 않은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가 나와 같은 고충을 겪는 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랑스러운 당신에게 긴 편지를 쓰며 나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일 수 있도록 늘 응원하고야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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