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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Sep 12. 2022

계획에 없던 경력직 공시생이 되다

1화. 망한 공무원, 아니고 공시생(1)

  2019년 겨울부터 나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의감 넘치는 관료가 되고 싶어서 시험을 준비한 게 아니었다. 나는 7급 외무영사직 시험에 응시해서 영사관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사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 영사관이라는 직업은 멋지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하며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업이다. 무엇보다 해외 영사관에서 일하는 건 있어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했고 가족과 사회가 바라는 것이 곧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감추는 일에 익숙했다. 이 악취미가 결국에는 내 직업관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하고 싶었던 건 많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내 재능과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했으며 개발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나는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명사나 형용사가 많아질수록 나는 수식어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곧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단 한 개도 없다는 말과 같았다. 모든 것을 얻고 싶었던 나는 어느 때부턴가 그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2019년 여름, 졸업은 코앞이었고 아빠의 정년퇴직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무척이나 초조해졌다. 나는 빨리 일자리를 얻어 일하는 것만이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가족의 자랑이 되고 싶었고 얼른 돈을 벌어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학창 시절 성실한 모범생이었고 공부가 성공으로 향하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믿었던 나는 공무원 시험도 열심히 하면 바로 될 것 같았다. 나는 뭔가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험을 봐서 바로 붙으면 되지 않겠냐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근자감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 시험에서 두 번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째선지 아주 오만했다. 무작정 공부 기계처럼 엉덩이를 무겁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수능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한 시험이지만 공무원 시험은 수험생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임을 병아리 초시생은 알지 못했다.


  나는 단 한 번도 휴학한 적이 없었는데 추가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기계처럼 공부해서 시험에 붙은 뒤 면접 준비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바로 졸업할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니 내 계획대로 되었던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내가 언제나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며 나는 완전히 계획형 인간이라고 말해왔지만 그 계획이 지켜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계획은 내 부족한 체력으로 지켜지지 않기도 했고 예상외의 변수들이 한데 뭉쳐 내 진로를 방해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계획은 내가 세워놓고 내가 망쳤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시험에 떨어진 건 나였기 때문이다.



  첫 시험에 떨어진 뒤에도 오뚝이는 다시 일어섰다. 사람들의 합격수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희망을 얻었다.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2년 차에는 시험에 붙었다. 그래서 나도 붙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나의 문제점들이 여럿 보였다. 단기간에 합격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공부를 거꾸로 하라고 했다. 단기 합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인강을 먼저 듣지 말고 기출문제를 먼저 외운 다음 인강을 들으세요.’


  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붙으려면 절대로 이 방법밖에 없다고 다들 확신에 차 말했다. 될 사람들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불안함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의 막연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톤의 목소리를 지녔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 무조건 돼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될까? 이렇게 하면 되겠지? 그렇지? 열심히 하니까 되겠지?


  2021년 시험부터는 시험이 달라졌다. 1차와 2차를 보게 되었다. 외무영사직은 국가직 밖에 없어서 나는 처음부터 큰 리스크를 안고 가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행정직이나 9급 시험을 함께 준비하라고 했지만 나한테는 그게 더 도전이었다. 다 찔러봤다가 죽도 밥도 안되면 그만한 지옥이 없을 것 같았다.


2020년 외무영사직 시험 과목
국어(한문 포함), 영어(토익 대체), 한국사, 국제법, 국제정치학, 헌법, 외국어(필자의 경우 스페인어)

2021년 외무영사직 시험 과목
1차: PSAT(공직 적성 검사.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으로 이뤄짐.)
2차: 1차 합격자에 한해 국제법, 국제정치학, 헌법, 스페인어 시험을 치른다.
(영어 과목은 토익 대체, 한국사 과목은 한능검으로 대체)
** 면접에서 떨어지면 2차부터 재시험을 치를 수 있음. 2차에서 떨어지면 다시 1차부터 시험을 봐야 한다.**


  1차는 행정고시나 외교관 후보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처럼 PSAT이라는 적성시험을 봐야 했다. 그리고 2차 과목은 내가 1년 차 때 공부했던 과목들이 들어갔다. 나는 2021년부터 시험이 바뀐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2020년 시험에서 한 번에 붙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떨어졌고 시험이 바뀌어 버리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새 시험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때 당시에는 지치지 않았다. 1년 차에도 뒤지게 힘들었지만 솔직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시험에 적응하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독서실에 갔다. 아침을 먹고 독서실에 있다가 점심때가 되면 짐을 두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독서실에 갔다.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공무원 책을 쌓아두고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그들에게로 가는 시선을 다시 거두려 노력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쟁자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거북해졌다.


  2년 차의 공부는 확실히 달랐다. 인강을 들으면서 기본서를 봤던 것과는 다르게 기출을 풀면서 몰랐던 부분들을 기본서를 보며 익혔다. 그리고 인강은 정말 모르는 부분만 찾아서 봤다. 이렇게 하니 확실히 효율적이었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지식도 모두 점차 내 것이 되어갔다. 이렇게 공부하니 작년에는 내가 형광펜 색칠만 하다가 시험장으로 향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작년의 나와 달라졌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나는 변화하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해 7월 시험장을 나오면서 나는 작년과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험이 달라졌고 작년과 생각도 달라졌다.

  '더 망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왔는데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며 엄마 아빠가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잘 봤니?"

  "네. 뭐 그럭저럭."

  딱 봐도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챈 아빠가 말씀하셨다. 나는 아빠 앞에서 거짓말을 잘 못한다.

  "그럭저럭? 그럼 못 봤다는 거야?"

  "아뇨. 그냥 잘··· 봤어요···."

  "아빠도 시험 여러 번 봐서 알아. 시험장 나오면서 알게 되어있어. 자기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그렇다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바로 밖으로 나가 열심히 뛰었다. 소화가 되지 않아 집에 와서 속을 게워내었다. 소화제를 먹고 잠을 청했다.

  잠에 들면서 생각했다. 아빠는 왜 나를 시험장까지 바래다주셨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미안하지도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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