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지 Sep 12. 2022

어느 날 고사장을 나오면서

2화. 망한 공무원, 아니고 공시생(2)

01

  작년 7월 시험장 풍경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어떤 문제에서 헤맸는지는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시험장에 1시간 전에 가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시험장에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의자가 덜컹거렸다. 아무도 없는 사이 여분의 책상과 의자를 가져와 덜컹거리는 내 것과 교체했다. 그럼에도 똑같이 덜컹거렸다.


  죄다 덜컹거리는 책상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다른 수험생 걸 가져와서 그 사람의 인생, 아니 시험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없었는데도 뭔가 마음이 걸렸다. 가방에 있던 종이뭉치를 꾸겨서 책상다리와 의자 다리에 꽂았다. 의자가 덜 덜컹거렸다. 이제야 참을만했다. 나는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청심원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시험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감독관이 들어와 말씀하셨다. 소지품을 앞으로 내놓으라고 했다. 뭐든 소지하고 있다가 걸리면 부정행위 처리가 된다고 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내 책상을 고정하려고 끼워 넣은 저 종이뭉치도 소지품이 될까? 이유 없이 제 발이 저린 나는 손을 들고 말했다.

  "책상이 흔들거려서 종이를 끼워놨는데 괜찮을까요?"

  그러자 감독관은 다른 책상으로 바꿔주셨다. 그 전 책상보다는 덜 흔들렸지만 왠지 그날은 모든 게 거슬렸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지만 난 장인이 아니었다.


  시험지를 펼치기 직전까지 최대한 뇌를 비우려고 했다. 트라우마는 좋은 기억으로 덮어야 한다는데 여전히 나는 시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입시에서 면접 광탈을 당하고 수능 국어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15분을 날려먹었던 일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그래도 청심원을 40분 전에 벌컥벌컥 마셔댔으니 조금은 여유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02

  종이 울리고 PSAT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지를 촤라락- 넘기며 페이지 수를 확인했다. 연필을 잡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청심원은 아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나 보다. 1교시는 언어논리 영역 시험이었는데 1번 문제부터 압도적인 텍스트 양이 밀려들어왔다. 그래도 공부한 건 있어서 ‘읽으면 다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다. 침착하게 풀었다. 침착하게 풀었음에도 마지막 문단을 읽는 데만 5분 이상을 썼다. 그날 나 몰래 누군가가 시간의 액셀을 밟은 것이 틀림없다.


  1번 문제는 태극기와 관련된 텍스트였고 태극기의 건곤감리 위치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태극기를 만든 사람에 따라 건곤감리의 위치가 다르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는 0.5초 만에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위치에 관해 물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예상만 적중했지 문제는 풀 수가 없었다. 헷갈려도 조금 헷갈리게 낸 게 아니었다. 바로 미련을 떨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는데 그다음 문제도 굉장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1번 문제로 돌아왔다. 1번부터 말렸다. 거의 블랙아웃이 된 상태로 다음 문제를 풀어나갔던 것 같다. 맨 정신이었는데도 이렇게 취한 것처럼 군적이 없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심호흡을 하고 5분 동안 멍을 때리다가 문제를 다시 읽었다. 이제는 시간 안배를 더 확실히 해야 했다. 보자마자 풀 수 있을 것 같은 건 바로 풀어 넘겼고 안 되는 건 찍은 다음 별표를 쳤다. 여기서부터는 연습한 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푸는 내내 1년 농사를 또 망쳐버렸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아니다. 2년 농사다.


  PSAT 시험은 시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 익명의 천재들이 모여 그들만의 리그를 하는데, 나는 들러리가 된 느낌이었다. 확실히 그런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하고 공무원 인강 사이트에 시험 점수를 입력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것 같다. 시험장을 나오면서 채팅창에 불이 나는 걸 봤으니까.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의 문해력을 알 수 있다. 어려웠다는 건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 시험을 망쳤다는 뜻이 아닌데 말이다. 그들은 망한 게 아니었다. 내 성적을 입력하고 분포도를 보면서 괜히 낚였다는 생각을 했다.


  ‘뭐지? 나만 x 된 건가?’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 충격적인 성적표를 들고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울어도 해결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내 눈물샘을 더욱 인색하게 만들었다. 잃을 거 다 잃었으니 수분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시험지 표지에 빨간펜으로 적어 넣은 시험 점수를 보며 여러 사람의 환상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망했냐며 나를 대놓고 질책 하시진 않겠지만 나는 그들의 실망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건 명절에 봐야 할 친척들의 얼굴이었다. 그분들은 상냥하게도 내가 취업을 했는가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늘 관심이 으셨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겉으로는 위로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또 망했냐고 비아냥 거릴 것 같아 그들이 무서웠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한 번 더 한다더니 결국 또 망했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해 뒤에서 나에 대해 말하고 다닐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내가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사실보다도 그런 것들이 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바다 한가운데 던져버리고 숲 속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졌다.


03

  '사람들이 보기에 그만하면 아주 좋은 직장이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나는 실패한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실패자 낙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건 아닌데?’ 분명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2년 차 시험에 떨어지자 나는 어딘가 나사가 빠졌던 것 같다. 아빠의 정년퇴직이 코앞이니 빨리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시 공부 말고 달리 매달린 게 없었다. 어떤 재주도 없었다. 나는 판에 박힌 문과였지만 그 잘난 경영학과도 아니었다. 물리도 화학도 못했고 코딩은 관심이 있었지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다음 시험이 언젠지를 확인했다. 그해 10월 말에 지방직 시험이 있었다. 나는 과목이 전혀 다른 새로운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내가 수험생인지 도박꾼인지 나조차 헷갈렸다. 3개월로 완전히 과목이 다른 시험을 치르겠다는 건 완전히 도박이었다. 겹치는 과목은 헌법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책을 사서 당장 공부를 시작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떨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