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지 Sep 18. 2022

걸작이 될 수 없었던 첫째 딸

5화. 아빠의 자랑으로 사는 건 관둘래요

01

얼마 전 내 이름의 비하인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은 소영이고 동생의 이름은 하정인데 동생이 언니를 앞서 나가선 안된다는 아빠의 생각 때문에 내 동생은 ㅅ보다 뒤에 있는 자음으로 이름을 써야만 했다. 아빠는 어째선지 그 부분에 꽂혀서 일반적으로 이름에는 '여름 하(夏)'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것 같다. 사주는 안 믿고 싶지만 '여름 하'자를 사람 이름에 쓰면 좋지 않다는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내내 불편해졌다.


  나는 가부장적이고 엄격하신 아빠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음에도 나는 늘 어떤 무언의 기대 한가운데 있었다. 동생은 성적표를 꼬박꼬박 가져오지 않아 매번 혼이 났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이 최영 장군처럼 공부 보기를 돌 같이했다. 예전에는 그런 동생을 마냥 한심하게 생각했지만 나 역시 그렇게 적당한 반항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아이의 일관성은 아주 본받을만한 덕목이다.


  나는 사실 사랑받기 위해 공부했다. 아빠에게 나는 선생님이나 교수 또는 반기문 사무총장님과 같은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그건 단지 ‘아빠가 지지해주는 꿈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명예롭고 어른들이 좋다고 말하는 꿈을 내 것인 양 말하고 다닐수록 나는 불필요하게 어른들과 싸울 필요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작가나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우리 집 사정으로 내 입시미술학원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야만 했다. 너는 그 돈을 감당할 만한 재능이 없다고.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재능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어린 날의 내게 이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다르게 나는 늘 부모님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했다. 늘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할퀴는 두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게 하지 않으려면 그들이 사랑을 쏟을 만한 자리가 내게로 향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잘난 딸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아픈 상상을 해도 그렇다면 나와 동생은 누가 돌봐주는 건지에 대해 제일 먼저 생각했다. 늘 다 큰 어른들의 감정 주의보를 살펴야 했던 우리는 스스로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아 효녀스러운 생각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02

공무원 시험공부를 포기한다고 했을 때 봤던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빠나 엄마는 아주 지독한 착각에 빠져계셨다. 학창 시절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내가 공부를 참 좋아하며 즐겼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학교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물풍선 터뜨리는 게임을 하거나 축구만화를 몰아보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공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들 시험은 다른 문제였다. 시험공부가 왜 잔인하냐면 나를 둘러싼 타인과 싸우는 것뿐 아니라 나 스스러와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팀조차 내편이 아닌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내가 마피아  1000명과 1000:1로 싸워야 한다고 한들 그 시점에서만큼 나는 내편이 되어줄 수 있다. 시험공부를 하는 과정에선 나는 절대 내편이 되어줄 수 없었다. 매일 나를 욕되게 하고 혹사시켜야 했다. 공부 안 하면 먹을 생각도 하지 마!라고 스스로에게 말했고 대신 위를 상하게 하는 커피를 마셔야 했다.


  나의 쓸모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증명해야 하는 일은 고되다. '1년만 더 하면’이라는 말이 나를 미치게 했고  '오기로라도 해봐.'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증명해봐.'라는 말이 내게 고개를 들어 아파트 28층을 보게 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핸들을 내가 쥐고 있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뚝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렸다. 부모님께 내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증명해야 했고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해야 했고 얼마 전 취직한 사촌오빠의 얼굴은 떠올리기도 싫었으며 내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들을 내게 늘어놓아야만 했다. 그런 과정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결국 아빠의 걸작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처음엔 마음이 아팠다. 내가 보란 듯이 자랑할만한 딸이 되지 못해서다. 하지만 이제는 후련하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보란 듯이’ 잘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난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나는 왜 살아야 할까에 대해 고민했지만 나는 내 행복한 삶 자체가 목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행복한 삶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 있는 것들의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실패하더라도 성공하더라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실패와 성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실패해도 행복한 사람과 성공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03

  언제나 아빠와 엄마의 사랑받아 마땅한, 자랑할만한 딸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늘 애써왔다. 하지만 시험에 몇 번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을 2년째 떨어지고 부모님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실망’이란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만 어려웠고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니었다. 나 스스로에게 무수히 실망하면서 왜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에는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부모라는 존재를 실망시키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놀랄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다. 지구가 망하거나 집이 폭발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나를 부풀려 생각한 이들의 허황된 거품을 바늘로 콕 찔러 없애버릴 때 그 쾌감이란. 나는 부모님의 대단한 걸작도 인생 성적표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지구에 살고 있는, 아주 평범한 이름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만화 주인공의 명대사를 떠올리며 오기를 부려보기로 했다.

  “절대 네 뜻대로 되게 하진 않겠어!”

  주인공은 주먹을 불끈 쥐며 악당에게 외친다. 사실 내 주변의 내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악당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내가 진심으로 잘되길 바랄지도 모른다. 정말로.

  하지만 그들의 화려한 색이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나의 본연의 색채를 위협한다면 그게 누구든 나는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 네 뜻대로 되게 하진 않겠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와 나의 잘남에 대해 증명하기 위해 사는 건 관뒀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쏟아부은 네 2년이 아깝지 않냐고 말하지만 나는 이미 헤어진 옛사랑을 놓아주지 못하고 보낼 앞으로의 수년의 세월이 더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분들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아주 추운 겨울에 나와 동생이 스케이트를 타던 모습을 손발을 비비며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어떻게 서든 졸업식에 오려고 반차를 내고 수개월 전에 ‘이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흘렸던 말을 기억해서 선물해주시는 분들이다. 늘 우리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신다. 나는 그분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핫 후라이드 치킨의 다리를 양보할 수 있으며 열대야에 한 대밖에 없는 선풍기를 기꺼이 내어드린다. 그 정도로 나는 그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그분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분들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게 기대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으로 이미 벅차다. 내게 기대하는 것도 그분들의 몫이고 실망하는 것도 그분들의 몫이니 나는 그분들의 몫을 가져와 내 것 인양 여기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의 부모님 역시 나처럼 위대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자식이 잘 되기 바라는 대한민국의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가 전혀 느낄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걱정과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머지않아 우리 부모님이 내가 지치지 않는 공부 봇이 아니며 대한민국에 태어난 그저 추리소설과 마법소녀를 좋아했던 평범한 아이임을 깨달아 주시길 바랄 뿐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시험에 붙었답니다!라는 이야기 속 나는  들러리일 뿐이지만 당신의 딸이 새로운 시작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애틋한 타인이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