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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Oct 03. 2022

우울, 편견, 그럼에도 나아지고 싶은 마음

6화. 2022년 3월 ~ 4월의 기록

1

  작년 11월부터 도서관에서 수험서를 펼쳤다가 책을 읽기도 하며 지냈다. 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은 조금 외로웠지만 글을 쓸수록 불확실함은 확실함으로 바뀌어만 갔다. 처음에는 현실과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아빠와 엄마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노력의 결실’을 맺은 다음에 1년만 다니고 곧바로 공무원을 관두는 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는 기특한 생각 대신 충동적인 자살사고가 뒤따랐다. 그 일이 ‘공무원’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내 사정을 설득하는 일에는 매번 번번이 실패했다.


  평소에도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너는. 취업했니?”라고 때때로 걸려오는 어른들의 달갑지 않은 안부전화로 정신이 혼미한 마당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 마구 소설을 쓰고 퇴고도 하지 않은 소설을 공모전에 내보기도 했다. 물론 떨어졌다. 대충 했으니 떨어지는 게 마땅했고 소설은 써본 적도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딘가 억울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 노력 없이도 얻어지는 게 때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로또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던 직장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의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졌다. 갑작스레 주차장 앞에서 춤을 추고 싶어지는 날이 있었고 초록색 검색창에 ‘아프지 않게 죽는 법’ 같은 말을 써넣었다. 그러면서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여느 작가의 말처럼 떡볶이도 먹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모든 걸 체념한 듯이 잔잔한 파도 같은 마음을 마주하기도 했다. 울다가 웃는 일의 반복이었다.

  

2

  엄마 역시 알코올 의존증으로 상담치료를 받으셨고 지금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시기에 엄마로부터 작은 조언을 얻고 싶었다. 나는 ‘요즘 너무 우울해서 상담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고 엄마는 묵묵부답이셨다.

  엄마는 "왜 갑자기.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드니?"'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들으니 엄마한테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딸에게 당신의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그리 달갑지 않으셨을 것 같다. 엄마는 치료로 의존증이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많은 분이셨다. 그곳에 들어간 후로부터 ‘나는 문제적 인간이고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가 후에 썼던 편지를 읽어보며 그렇게 짐작할 뿐이었지만.

  결국 엄마한테는 ‘아빠한테 내가 했던 이야기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한 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진지하게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엄마 역시 순수하게 나의 치료 결정을 지지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치료에 대한 욕구 또한 다시 가라앉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알코올 의존증을 ‘정신력이 약해서’라는 말로 방치했던 가족들 탓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받았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의 우울함을 방치해왔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친구들의 농담. 학교에서 조금만 개성이 강한 친구들을 봐도 아이들은 “쟤 언덕 위에 하얀 집 사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고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였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으면 농담 인양 함께 웃어넘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 정신과를 방문할 일이 없을 거라는, 초등학생의 오만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그런 편견 속에 자란 아이들이 지금 취업준비를 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른이 되었다. 마음의 감기가 걸려도 병원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 국가가 되었다. 나 역시 병원으로 향하기보다는 자살사고를 하는 편이 익숙했다.


3

  한때 상담치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했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조언을 구하면서도 병원에 가는 건 관두자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혹시나 뇌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읽히지 않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쩌냐는 말들을 친구에게 늘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편견이 아주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한 번 약을 먹기 시작해서 평생 먹으면 어쩌냐는 두려움을 내비치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는 장염 약 먹으면서도 평생 이 약에 의존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 해? 감기약 먹으면서도 평생 감기약 먹으면 어쩌지, 그런 걱정 하니?”

“어.. 아니.”

“약이 안 맞으면 의사랑 상담해서 조절하면 돼. 그리고 처음부터 약을 그렇게 많이 처방해주지도 않아. 무서워하지 말고 다녀와도 돼. 그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까. 뇌가 기침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뇌와 관련된 약을 복용하는 거랑 내과 약을 복용하는 건 많이 다르지 않아?”

“내과에서도 단순한 장염에 처방하는 약이랑 대장암이 걸렸을 때 받아야 하는 치료가 다르잖아. 정신과 치료도 똑같아. 뭐든 정도가 다를 뿐이고 세상의 모든 약에는 조금씩 부작용이 있어. 부작용이 있느냐 없느냐는 또 개인의 차이고.”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치료를 받았던 친구에게 내 편견을 너무 드러내어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친구의 말처럼 내과에 가도, 외과에 가도 자신의 상태에 따라 치료받는 약이 다른 것처럼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같았다. 경험해 보니 의사가 병원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센 약을 처방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 약으로 하루아침에 난독증이 생기거나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덕 위의 하얀 집'의 사람이 모두 어둡고 때로는 폭력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친구는 평소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회사도 무탈하게 들어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근황을 SNS에 올리곤 했다. 모든 사람은 입체적이었고 우리가 뭉뚱그려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납작하지 않았다.


  누구나 이렇게 겪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의 아픔을 계속 방치하는 것보다 병원 문을 두드리고 치료를 받는 편이 낫지 않나.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픔을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개선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출이다. ‘우린 나아지고 싶어요’라는 말과 같으니 오히려 긍정적으로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렇게 조언을 구했던 일이 무색하게 나는 며칠 뒤 편의점을 다녀오면서 옥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가 아찔한 풍경을 보고는 다시 계단을 내려오게 된다. 가까이 자살충동을 느꼈다가 잠잠해지는 일을 견디다 못해 "가야 한다.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병원으로 향했다. 그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오로지 내 결정과 내 의지로 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나아지고 싶었다. 이 우울함과 무기력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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