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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Oct 09. 2022

병원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것을 권고받다.

7화.  네? 그래도 괜찮다고요?(2022.4월~6월까지 기록)

- 지금까지 이야기 -
  2년 넘게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뒤 포기 의사를 밝혔지만 합격할 때까지 공부하라는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해 수험생활을 하는 척하며 도서관에 가서 몇 개월간 책만 읽었다. 그러다가 스스로 실패자라는 생각과 우울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일의 고충으로 힘들어하다가 상담을 받기 위해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충동적으로 병원에 뛰어갔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 당장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전의를 상실하고 다음 주에 재방문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뒤 진료를 받기로 예약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다른 병원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것 또한 충동적으로.

  최근 상담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므로 병원을 처음 방문한 기분은 어땠는지와 같은 이야기는 길게 적지 않으려고 한다. 그곳도 그저 똑같은 병원이었다. 내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받는 그런 평범한 병원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풍경은 그랬다. 병원에서는 향긋한 허브향이 났다.


  어린 시절부터 내 속 깊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진솔하게 말했던 경험이 별로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고 의지하더라도 '속이 후련하다'는 마음보다는 '미안하다'는 마음과 '빚을 지고 말았다'는 마음이 나를 괴롭게 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말과 '누군가 너를 그냥 도와준다면 꼭 의심부터 하고 보라'는 말들은 때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나는 애먼 사람을 의심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너무 믿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했던 고민상담이 반 전체에 퍼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은 늘 나의 '약점'으로 바뀌어 돌아오는 부메랑 같았다.



  사실 의사 선생님께 시험에 떨어지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될 줄이야 알았지만 유년시절의 경험까지 이야기하게 될 줄 몰랐다. 어린 시절 가정사와 가정환경이 내게 미쳤던 영향, 공무원 시험이 끝나고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중요한 대화만 옮겨 적어보겠다.


  “그럼 시험이 끝난 뒤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부모님은 소영 씨가 계속 공시에 도전하시기를 바라시는 거죠?”

  “네. 그런데… 설득하기가 너무 어렵고 무서워요. 한 번 말을 꺼내봤지만 실패했고 또 그런 폭언을 듣고 싶지 않아요. ‘네가 그러니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다’라는 말부터 ‘공부하기 싫으면 죽으라’는 말까지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가족과 대화하기를 포기한 것 같아요. 요즘은 제가 먼저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고 피하고 있어요.”

  “엄청 답답하시겠어요.. 너무 힘드시겠다…”

  “하하..(네 힘들어요라고 말하려다가 울 것 같아서 그냥 삼켰다.) 그래서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가서 하루 종일 앉아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산책하다가 집에 와요. 아빠 퇴근 시간이 7시인데 저는 집에 10시에 오거든요. 그러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새벽에 가족이 모두 잠에 들 때까지 거실로 나오지 않아요.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었어요. 몇 달간.”


  가족 욕을 한다는 건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 죄책감과 싸웠다. 그분들은 여전히 고마운 사람들이고… 나를 키워주신 분들이고.. 힘들게 일하면서 까지 나를 먹여 살리신 분들이고… 때때로 공부하기 싫으면 죽으라는 말을 하지만 본래 마음은 그런 게 아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소영 씨. 가족이랑 격리가 필요해 보여요. 그리고 소영 씨는 성인이에요. 소영 씨 삶은 소영 씨 거예요. 그러니 힘겹게 다른 사람의 허락을 구해가면서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싶다면 떨어져 지내도 되고요.”


  언제나 ‘너희 아빠가’ ‘너희 엄마가’  너를 힘들게 했지만 그럼에도. 너도 다 크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말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어른이 되면서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생겼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나만 늘 그분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건 역시나 억울했다.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된다니. 애써 누군가와 맞서고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니.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지만 누군가의 허락이 떨어지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허무해졌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늘 무겁게 다가왔지만 ‘너는 어른이야. 네가 선택하고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야.’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나는 범죄를 계획하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서 지냈다. 처음 복용하는 약이었던 지라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많이 졸린 정도에서 그쳤다. 매주 상담하는 내용은 비슷했고 상담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그래서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약은 먹고 좀 많이 졸렸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다음에는 좀 덜 졸린 약으로 바꿔주셨다. 그래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내 자살사고의 기저에는 "죽고 싶다. 힘들어! 죽고 싶다고! 삶은 고통 그 자체야!!!”라는 외침이 있었지만 수동 공격적인 성향도 있었다. 가족이 나를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가족이 슬퍼할 생각에 행복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라는 식의 복수심. 하지만 이것 역시 건강한 사고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소중한 나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로를 활보했다. 무기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내 삶의 당위성이나 내 존재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고 또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우울함을 한 스푼씩 덜어내고 있었고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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