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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Oct 09. 2022

가족 몰래 취업상담을 신청했다.

8화. 지금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2022.0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풍경이 인상주의 화가가 그린 어떤 풍경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나만이 그곳의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 행성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병원을 잘 다니고 있었고 충동적인 생각은 거의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었다. 난 여전히 때때로 불안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가족 몰래 도서관에 다녔으며 공무원 시험공부에는 여전히 손 놓고 있었다. 변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부모님과 맞서는 일은 여전히 버거웠고 내가 이뤄놓은 것은 없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라는 말은 들었지만… 대체 어디서? 호텔에서 잘 수도 없었고 모텔에서 잘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그렇게 새벽 네시가 넘어가고 있을 때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너무 거창한 것 말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과 맞서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폭언. 그리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 경제적 지원! 지인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원조는 최대한 받으라’고 말했고 내가 부모님께 공부하며 용돈을 받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말하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엔 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 있으니 받는 것이 어색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어릴 때부터 ‘돈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은 나는 당연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경제적 원조를 받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연애를 하면서도 받는 것은 고역이었다. 상대방은 주고 싶어서 주는 선물이니 부담스럽게 느끼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돈이 없으니 다른 소소한 것들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게 내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예를 들면 억지로 웃는 웃음이나 리액션, 가짜 애정 표현 같은 것들로 말이다.


  경제적 지원은 내게 그런 의미였던 것이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드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 나와 가족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다른 가정으로 이직할까? 그러나 거기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안 되겠어. 이러다간 평생 이렇게 잡혀 살게 될 거야..."


  새벽 다섯 시. 불안한 생각이 나를 다시 지배하기 시작하자 병원에서 준 약을 삼키고 나는 노트북을 켰다. 친구가 정부지원을 받아 취업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나서였다. 몇 주를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은 30분도 되지 않았다. 나는 국민 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하고 국비지원을 받아 학원에 다니기로 결심한 뒤 침대에 누웠다. 당연히 손은 떨리고 있었고 '잘한 걸까?'라는 생각과 '일단 저질러버려야지. 이미 신청했는데 뭐 어쩔 거야?'라는 생각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생각이 행동이 된 건 아주 충동적이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몇천 개의 굵은 스프링이 한 번에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살기 위한 본능과도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가만히만 있으면 물에 뜬 다는 걸 알면서도 살기 위해 두 팔을 끊임없이 허우적대는 그런 몸부림. 내가 지나치게 논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이유는 이렇게 살면 너무나 불행해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울며 겨자 먹듯이 하고 붙어서 좀비처럼 출근하다가 적당한 시기 의원면직을 해 새로운 시작을 꿈꿔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을 비틀비틀 거리며 걸어갈 내 모습을 상상하면 그건 한없이 불행했다. 행복하기 위해 힘든 여정을 택할 자신은 있었지만 불행하기 위해 괴로운 여정을 택할 자신은 없었다. 나는 당장 변해야 한다고 느꼈다. 치밀하게 향후를 도모할 여유는 없었다.


‘언젠간 변해야 돼.’

‘그게 언젠데? 대체 언제 바꿀 수 있는데?’

그건 지금이었다. 그날 밤. 당장! 당장이 아니면 안 됐다.



온라인으로 취업상담 신청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밴드 오아시스(Oasis)의 노래를 들었다. 헤드폰 사이로 풍부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Maybe I just wanna fly

어쩌면 난 그냥 날고 싶은 걸지도 몰라

Wanna live, I don't wanna die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Maybe I just wanna breathe

어쩌면 그냥 숨 쉬고 싶은 걸지도 몰라

Maybe I just don't believe

그냥 믿지 않은 걸 수도 있지

Maybe you're the same as me

너도 나와 같을지 몰라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우린 그들이 절대 보지 못하는 걸 봐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너와 난 영원히 살게 될 거야.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생각했다. 이렇게 무력한 삶이라면 사라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들이 사실은 너무나 살고 싶어서. 내가 내 삶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너무나 잘 가꿔보고 싶어서. 그 정원을 사랑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알고 나니 조금 울컥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정반대 방향인 불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조금 쉬고 싶었을지 모른다. 큰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숨 쉬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는 전혀 내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내 속을 읽어줬으면 했던 것 같다. 거창한 죽음이라는 이름 뒤에는 사실 희망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변하고 싶다는 바람이. 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여기서 한 발만 더 행복해지고 싶었다.




  약 3주 뒤 취업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취업상담을 받으러 고용센터로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바로 다음 날로 상담 예약을 잡았다. 나는 그 연락을 받은 다음날부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부모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를 깨뜨렸다.


+

(여러분은 이렇게 임의로 약 끊으시면 안 됩니다. 꼭 전문가와 상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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