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상담 시간을 잡은 뒤 정신과 진료 예약을 뒤로하고 취업상담을 하러 갔다. 취업상담이라고 해봤자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물어보는 게 똑같다.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직업 적성 테스트를 해보면 좋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아빠 몰래 공무원 시험을 접고 취업하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학원 수업비가 전액 무료인 과정을 들으려고 했다. 웹디자인 과정과 코딩 과정등이 있었는데 나는 디자인과 퍼블리싱 수업을 하는 프런트엔드 과정을 듣게 되었다. IT 과정은 대부분 국가에서 전액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나는 무료로 훈련장려금까지 받으며 학원을 다닐 생각이었다. (물론 수업의 질은 장담 못한다는 것이 인터넷 수강후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내겐 모든 것이 손실과정에서 살기 위한 도전적 선택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수업의 질이 나쁘더라도 부모로부터 학원비는 지원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수업내용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건 혼자서 어떻게든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갔었다.
취업상담에서 놀라웠던 점은 선생님께서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말을 해주셨다는 점이다. 내가 만난 모든 어른들은 전부 꽉 막힌 사람이었는데 취업상담 선생님께선 그런 분이 아니셨다. 내가 공시생활을 끝장도 보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정말 힘드셨겠어요."라든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나의 부모와 비슷한 연령대로 추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계속 도전하는 시험에 떨어지고 내가 이 길이 더 이상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깨끗하게 놔버리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내 결정을 응원해주는 말을 듣기가 정말 어려웠다.
"2년 반 동안이나 공부했는데 아깝지 않아?"
"네가 그동안 해온 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 거밖에 없는데 어떻게 다른 걸 시작하겠다는 거야?"
"갑자기 어떻게 IT 직군 일을 하겠다는 거야? 갑자기?"
내 주변인들은 나의 지금까지의 모습들을 보고 나를 판단한다. 그들은 '부모 말을 고분고분 잘 듣던 딸'이나 '선생님 말을 잘 듣던 학생', '크게 자기 주장하던 것 없이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던 사람'으로 나를 기억한다. 나는 그런 모습으로 늘 남들에게 비치려 애써왔다.
그들이 '갑자기 변한 내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또 다른 측면이다. 갑자기란 건 없다. 나는 원래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고 이제야 그걸 드러내는 것이 내 삶에서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물론 아깝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 앞으로의 시간이 훨씬 아깝다고 생각한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가능성을 묻지 않는 내가 조심스럽게 상담 선생님께 여쭸다. 보통 같으면 주변에 의지할만한 사람이나 부모님께 여쭤봤을 법한 질문인데 정신 차려보니 나는 나를 한 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선생님께 이렇게 질문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때 따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 딸은 좋아하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적성에 맞는 일이 있었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 애였어요. 학부모 상담 전화를 받거나 고객상담 전화를 하는 업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을 잘했고 또 그 분야에서 칭찬을 받는 아이였죠. 하지만 언제나 그 아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불만이 많았어요.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어느 날 회사에서 제 딸아이에게 디자인 업무를 맡겼는데 그 아이가 밤이 새도록 디자인 툴을 다루던 모습을 봤어요. 처음이라 잘하지 못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죠. 다음날에 '너 밤새웠니?'하고 물었더니 '엄마! 나 이 일이 정말 잘 맞나 봐. 너무 재밌어!'하고 말하더군요. 밤을 새웠는데도 너무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부모로서 그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했어요. 제 딸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며 기뻐하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소영 씨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으면 해요. 아직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좋아하는 걸 못 찾는 게 당연해요. 그런 걸 찾으려고 사회에 뛰어드는 거고요. 소영 씨도 할 수 있어요."
나는 상담실에서 이 말을 듣고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감동적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너무 분해서였다.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진 부모가 있는 거냐고. 말이 되는 거냐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따님을 아주 많이 질투하고 또 시기했다.
취업상담이 끝나고 여러 군데 학원을 알아보러 발로 뛰어다닌 뒤 제일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등록했다. 그때가 7월 초였고 개강은 8월 초였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서 나는 그동안 미친 듯이 소설책을 읽었다. 집 앞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취업상담을 다녀오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세상이 그 어떤 뭣같음을 내게 선사하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아빠의 말이 나를 죽이려들었지만 상담선생님의 말이 나를 살렸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나를 살렸고 또 너라면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던 은지의 말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그의 등을 떠받쳐주는 듬직한 두 손은 못되더라도 작은 손가락 정도는 되어줄 수 있지 않나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