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시험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미워하는 분들을 위해
작년 8월 엄마가 암에 걸렸다. 암의 이름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인데 백혈병의 경우 급성보다는 만성이 치료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한다. 엄마는 암치료약을 복용하며 향후 5년간의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행은 이렇게도 노크매너가 없었다. 녀석은 지독히도 악동 같아서 정의나 권선징악의 개념 따윈 없다. “실례지만,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 때나 아무 집문을 덜컥 덜컥 열어버렸다. 난 그 아이가 싫었지만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애석하게도 불행이 말없이 찾아오자 나는 불행을 탓하기는 커녕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녀석에게 마스터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집문을 잘 잠그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했다. 불행이 이렇게 불쑥 올 줄 알았다면 작년에 시험을 이미 붙었어야 했는데!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직장이 이미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매너 없는 불행보다 불행이 이렇게 갑자기 올 줄 몰랐던 나 자신을 탓했다.
엄마가 백혈병에 걸렸던 날 썼던 일기를 봤다. 나는 일기를 끝까지 읽으면서도 내내 거북했다. 내가 나를 너무 미워하고 또 용서할 수 없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금 걱정을 해서 나아질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런 건 없다. 그저 내가 빨리 성공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왠지 살면서 나의 무능력을 광고하는 기분이다. 내 자신을 칼로 찌르고 싶었던 건 살면서 처음이다. 슬퍼할 시간이 없다. 얼른 금의환향해야겠다.” - 2021. 8 25.
내가 시험에 떨어진 벌로 엄마가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제어가 잘 되지 않았다. 아픈 엄마한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내가 병은 치료해 주지 못해도 경제적으로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에 나는 그날 이후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물론 공부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내 것이 아닌 불행의 기운을 빌려와 한없이 우울해진다. 내 탓이 아님에도 내 탓을 한다. 그럴수록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라도 더 잘 돼야 해.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 돼.’라는 효자스러운 생각을 한다. 내가 되고 싶은 나나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변 사람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시험을 앞두고 계신 분들께 꼭 이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부모님 얼굴이나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동기부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을 두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려워진다.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수많은 자잘한 실패를 하고 그로부터 배우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만다. 공부를 하며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수록 내가 나를 위해 시작했던 것들이 모두 그들을 위한 쇼윈도가 된다.
2년 조금 넘게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너무도 나 자신을 많이 잃었다. 틀린 문제 하나하나에 나의 가능성을 의심했고 더 나아가 ‘이런 것마저 틀리고 나 왜 사냐’고 질문하면서 나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했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 늘 지인들과 가족의 얼굴을 생각했고 그들에게 내 가치와 쓸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점점 내게 인색하고도 완벽한 타인이 되어 나를 어떻게 서든 찍어 누르고 이겨보려고 애썼다. 열심히 싸우기만 하고 화해하지는 않았었다.
스스로에게 사랑의 매를 때릴지언정 상처가 난 곳에는 반드시 약을 발라주고 토닥여 주기도 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이 힘들고 긴 수험생활을 내가 잘 버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응원하며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서 시험에 붙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확신드릴 수 없다. 하지만 시험을 망쳐서 너무나 불행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불행과 우리는 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려야 한다. 불행과 서로 마주 보게 될지라도 결코 그런 순진한 악동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결코 너 같은 녀석 때문에 나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나와 한편이 되어 불행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다시 일어설 수 있다.
2022.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