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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Jan 10. 2023

세상을 향한 공격성이 용인되는 사회

  몇 개월 전 보도된 새마을금고 여직원 갑질 뉴스가 최근 다시금 생각나기 시작했다. 새마을금고 점심시간마다 여직원이 찌개를 끓이고 상사들의 밥을 차린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해당 직원은 본점으로 발령이 났으나 본점의 여자직원이 한 명이었기에 여전히 밥을 차린다는 기자의 마지막 멘트로 뉴스가 끝났다. 씁쓸해졌다. 갈수록 오버스펙인 취준생들에 비해 취업자리는 좁아지고 있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힘든 비정규직의 자리만 늘어가고 있다. 이 일이 곧 내게 닥쳐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새마을금고의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반면에 그 악습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사연 제보자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이전 선배들이 늘 그래왔으니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사회생활’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신입들에게 강요해왔던 것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에 실업자 신세니 울며 겨자 먹기로 악독한 관행을 버텨냈을 테다. 저항하지 못한 사람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최근에 오은영 박사의 특강을 시청했다. 오은영 박사는 이렇게 다. “청춘들은 세상을 향한 공격성을 길러야 한다.” 여기서 공격성이란 사람들을 물어뜯고 할퀴는 공격적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정당하지 못하게 나를 아프게 했을 때 “아파요! 왜 때려요?”라고 저항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공격하는 것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나를 다독일 줄 알며 스스로 위축되지 않는 것. 여기서 오은영 박사가 말하는 공격성이란 그런 것이다.


  나 역시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공격성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것에는 부당하다고 외칠 줄 알고 주변이 나를 오답으로 몰아가고 미친 사람이라고 말해도 스스로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책하는 것에 익숙하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넘어가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검열한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허락을 구한다. 이렇게 느껴도 되는 것인지. 내가 이런 상황에도 버텨야 하는 것인지. 확실히 우리는 자책카드의 한도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사회 분위기가 ‘공격성’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어린양들이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부당하다고 외쳤을 때 그를 시정할 줄 아는 고용주와 상사의 태도가 필요하다. 실제로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국가가 그나마 가장 청렴한 고용주라서’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새마을금고의 악행을 고발한 여성직원은 왜 본점으로 발령이 났을까. 그리고 왜 그곳에서도 계속 밥을 차리고 있을까.


  ‘우리도 다 그랬으니 너희도 그래야 돼.’라는 마음은 선배로서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라 복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사람이란 거의 다 똑같아서 아래세대가 윗세대보다 크게 특출 나게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같다. 자신이 악습의 원흉인 줄 모르고 ‘사회생활’이란 이름의 악습을 반복하면서  ‘세상이 요 모양 이 꼴’이라고 세상 탓만 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든 사람들이 아주 청렴하고 이성적으로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의 결정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악습을 고발하는 용기 있는 피고용인과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청렴한 고용주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어른이자 선배이자 상사가 되고 싶다. 언젠가 동료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그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고. ‘이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어른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 톨스토이



참고영상

https://youtu.be/oPYgGkVVl5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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