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게스트 하우스나 하숙집, 기숙사처럼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고 붐벼 사는 것이 아닌 정말 혼자 사는 집에 대한 로망. 주말에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평일에 집에 오면 아무런 말에 대꾸하지 않아도 되는 곳. 통금시간이 다 되면 우물쭈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외박한다고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므로 혼자 사는 건 세상을 다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스무 살 초반과 달리 스무 살 중반이 되어서도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하지만 자취에 대한 열정과 갈망뿐만이 아니라 두려움도 많아졌다. 자유란 얻은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배웠는데 살아오면서 그 말을 실감할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가 얻은 자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때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내 핸드폰 요금을 직접 지불하게 됐을 때다. 그때는 요금제를 설정하는 거나 핸드폰을 사는 것 모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아빠한테 신신당부를 해놓은 상태였다. 어떤 달은 데이터를 너무 많이 써서 휴대폰 요금이 6만 원 가까이 나왔고, 그런 달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초콜릿 우유 하나로 때웠다. 나중이 돼서야 친구로부터 만 24세 이하는 모두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가 많이 바보 같았다. 내가 혼자 책임지겠다고 떵떵거려놓고 정작 아는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완전히 <빈 수레가 요란하다>의 표본이었다.
자유를 얻는 것보다도 얻은 자유를 지키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기어이 혼자 살게 되고 나면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살림을 하고 나를 씻기고 먹여 살리는 과정 모두가 내 몫이 된다. 누군가에게 마트 가는 일을 부탁해놓고 청소하며 기다릴 수도 없다. 내가 일하러 다녀오는 동안 이사를 준비하며 부동산에 다녀와 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다. 모든 일이 내 몫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젊은이의 패기’라는 스테레오타입에 갇힌 작고 귀여운 먼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얻지 못한 자유.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에 있지만 자유를 얻고 나서도 그걸 지키는 일은 훨씬 어려울 테니 준비를 차근차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취직도 안 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받고 있는 교육을 잘 받고 나보다 앞서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이 만나서 하는 직장과 사회생활에 관한 이야기들, 주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라 생각해서 늘 귀 기울여 듣지 않았었다. 이제는 모든 경험이 공부라고 생각하니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늘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모르면 질문하세요.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다. 맞벌이 가정의 첫째가 늘 그렇듯이 누군가에게 선뜻 도움을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내가 조금만 찾아보고 조금만 견디면 되는 일이라면 내 선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나는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것들도 최대한 질문하지 않고 내 선에서 해결해 왔다. 정말 모르겠다. 마음의 빚을 만들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법을.
하지만 정말로 내가 자유롭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혼자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알게 된 건 사람은 정말로 ‘혼자’는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주말이면 가족을 만났고 또 따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혼자 자유로우려면 ‘혼자가 혼자가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손가락만큼의 따스한 온도만 빌리고 싶다. 오늘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다가 TV채널을 돌리느라 아이스크림 봉지를 손가락으로 감 싸들고 잠시 있었는데도 아이스크림의 겉 부분이 살짝 녹아버렸다. 사람의 손가락은 작디작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덮고 잘 수 있는 따뜻한 이불의 온기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한 손 한 손이 모여 만들어진 온기이다. 홀로 서기 위해 다양한 삶과 사람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의 절반이 설렘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