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가 좋은 대학교에 온 것이 부모님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0살의 나는 대치동에서 유명한 영어학원 입단 테스트를 떨어져서 결국 꼴찌로 들어갔고, 학교에서 테스트를 볼 때마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11살의 나는 교내 수학경시대회에 입상하기 위해서 등교하기 전 매일 아침 수학경시대회 문제집을 풀었고,
11살의 나이에 잠을 잘 때 코피가 터져서 베개를 흥건히 적셔서 익사하는 공포로 새벽에 눈을 뜬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과 거리가 멀던
내가 미국을 다녀온 뒤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항상 1등급을 받았고,
(심지어 외고를 지원하기도 했었다. 비록 떨어졌지만)
초등학교 4학년에는 수학경시대회에서 매번 입상했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가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그건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록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식이 영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는 하지만...ㅎ
공부를 죽도록 해야 했고, 코피가 터지도록 노력했다고 생각한 나는 부모님한테 공부를 잘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다.
"너는 부모님이 똑똑하니까 노력 안 해도 쉽게 쉽게 좋은 성적을 받나 보다."처럼 들렸다.
비록 이렇게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나의 노력을 폄하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공부를 쉽게 한다고 생각했고 나의 노력을 보지 않았다.
엄마, 아빠 또한 그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공부를 잘하기 시작했던 고등학교 때부터는 마치 내가 공부를 하지 않는데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하셨다.
일단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감시하는 느낌이 들 때는 공부에 집중이 안 돼서 주로 독서실과 학교에서만 공부를 했고 집에서는 그냥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왔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그렇게 생각할 법하다.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쨌든 내가 고등학교 때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 나는 내 노력이 내 성취의 9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앞으로도 계속 내가 노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고 더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백조처럼 평화롭게 물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일 순 있어도 사실 물 밑에서는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을 구르지 않으면 가라앉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열심히 굴러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나를 보고 본인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너는 백조니까 발을 한 번만 휘저어도 내가 백 번 휘젓는 것보다 훨씬 멀리 나가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 말이 내 노력을 지워버리는 것 같아 억울했고,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백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게 바로 능력주의가 이상적이기 어려운 이유다.
능력주의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각자의 출발선·환경·타고난 조건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나는 내가 고등학교 때 피 터지게 공부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온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 것 같다.
그러니 내 성취는 전적으로 내 노력 덕분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계속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을 준비하며 공정에 대해 고민하고,
능력주의를 의심하는 김현철 교수님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그 믿음이 얼마나 ‘부분적 진실’이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하고,
부모가 물려준 유전이 30%, 성장 환경이 10%,
나머지 ‘내가 만난 행운과 불운’이 또 다른 큰 몫을 차지한다면,
내가 이뤄온 것들 중에서 순수하게 “내 노력만으로 이룬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삶에도 운과 환경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대치동이라는 입지에서 학원을 다닐 수 있었던 것,
어릴 때 미국을 다녀와 영어 노출이 확 늘어난 것,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가정 분위기,
경제적으로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던 조건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노력”의 토양이었다.
그러니 내가 열심히 발을 굴렀다는 사실은 진실이지만,
발을 굴릴 수 있는 넓은 물, 안전한 물을 갖고 태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반대로, 물이 탁해 시야도 안 보이고,
발을 아무리 굴러도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너는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김현철 교수의 말대로
“나는 운이 좋고 너는 운이 나빴을 뿐”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겸손해진다.
그리고 그 겸손은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품’을 만든다.
능력주의의 진짜 문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거나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을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결론 내리는 태도다.
나는 오래도록 내 노력을 지키기 위해 “내 성취는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 말속에는 내가 가진 행운을 외면한 교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모르는 무지가
조금씩 섞여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노력했다. 정말로.
그러나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운이었다.
좋은 부모, 좋은 환경, 좋은 선생님, 좋은 타이밍, 좋은 만남.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발을 굴릴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성취는 오히려 더 귀해지고, 남은 삶은 더 넓어진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바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모든 조건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노력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새벽 독서실 자리에서 시작해, 밤 12시에 집으로 돌아오던 고등학생 시절.
주말도 반납하고, 성적에서 1점이라도 떨어지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문제집을 풀어가던 나.
그 기억들이 내 성취의 90%라고 믿지 않으면
나는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능력주의의 한계를 공부하면서,
그 90%가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퍼센트였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이걸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신,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마치 내 삶이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수많은 행운과 도움의 조합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마움’이라는 감정으로 흘러들어왔다.
고마운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이상하리만큼 겸손해지고,
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욕심보다
누군가에게 작은 바람이라도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자란다.
능력주의를 믿을 때의 나는
내 노력만 보느라 바빠서
주변의 도움을 제대로 볼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능력의 세계를 지탱하는 건
운, 환경,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라는 걸.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더 긍정적이고,
더 겸손하고,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로스쿨 면접을 대비하여 공부하면서, 유발 하라리의 책을 많이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아주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평생을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왔지만,
나는 늘 ‘50개의 이유’를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친구가 내 연락에 늦게 답하면
단순히 “바빴겠지”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빴을까? 혹시 무슨 일 있었나? 내가 말투가 좀 무례했나? 피곤했나?”
이런 식으로 브랜치가 가지를 치듯 10개, 20개씩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나는 그 결정 하나를 이루기 위해 엄마가 거쳤을 선택지들을
모두 상상해 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너무 진지했고,
말도 어렵고, 설명도 길었다.
나는 그게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예민하다고.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세상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우리가 내리는 선택의 배후에는
무의식 속에서 서로 충돌하는 수십 개의 이유들이 있고,
우린 그걸 전부 언어로 꺼내지 않을 뿐이라는 걸.
나는 그걸 꺼내서 생각해 버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나를 괜히 어렵고 피곤한 사람이라고 탓했는데,
돌아보면 그건 그만큼 내가 신중했고,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단 하나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결혼식에 못 왔다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이유 하나만 듣고도 충분히 납득하지만
나는 그 뒤에 있을 49개의 이유까지 상상해 버렸다.
엄마가 어떤 말투를 썼을 때,
대부분은 “엄마가 그렇게 말하려고 한 게 아니겠지” 하고 넘기지만
나는 그 말 뒤에 있을 감정·상황·의도를 끝까지 파헤치려고 했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냥 사람과 관계에 대해 매우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사고방식의 깊이였다는 걸.
사피엔스가 왜 그렇게 매혹적인가를 설명한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발 하라리가 대단한 이유는
그가 ‘새로운 사실’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존재해 온 질문들을 정교하고 매력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문득 나 자신을 이해했다.
나는 늘
“어떤 말이 사실인가”보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안에 얽힌 맥락은 무엇인가”를
계속 따져보고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이 길었고, 설명이 진지했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늘 층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게 나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나답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이 든다는 것은 많이 느끼고, 많이 받아들이고, 많이 이해하려 한다는 뜻이다.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도,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영상은 왜 갑자기 내 알고리즘에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평소에 생각해 오던, 그리고 요즘 들어 많이 했던 생각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길래 괜스레 눈길이 갔다.
나는 항상 들었던 생각이 다들 좋다고 해서 노력해서 따낸 고학벌이 가끔은 나에게 족쇄가 된다는 것이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기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잉왜또화내요좌.. 이제야 공감이 됩니다.)
고학벌은 그 어느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가 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저 누군가의 동경과 인정만을 위해 대학을 가는 것은 큰 낭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학벌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학창 시절 들인 노력을 보여주는 증표이자 증명서 같은 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말한다. 명품백 같은 거라고.
있으면 좋고 남들의 부러움? 정도 살 수 있지만 딱 그 정도인 것
대학을 나와서도 대학 입학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계속 들여야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눈만 높아져서 쉬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20대에는 실패도 해볼 수 있는 게 잃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고학벌 20대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완벽하던 내 인생에 오점이 될까 봐 혹은 스카이나 나와서 저렇게 실패한다고? 소리를 듣기 무서워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들인 노력은 분명 내 인생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 성취가 나에게 자부심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한 압박이 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와서 좋겠다”라는 말이 칭찬처럼 들려야 맞는데,
내 마음 한편에서는 늘 이렇게 되묻는 기분이었다.
“근데… 그래서 나는 뭐가 달라졌지?” “그럼 나는 계속 잘해야만 하는 사람인가?”
나는 대학 입학을 내 노력의 ‘증명서’라고 여겼지만, 어쩌면 그 증명서가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압박,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 조금만 쉬어도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
이 모든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쌓였다.
사람들은 보통 고학벌이면 도전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발판이 좋으니까. 떨어져도 다시 올라올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좋은 대학 출신일수록 실패를 훨씬 더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잃을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잃는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커진다.
나는 스카이·서연고 출신 친구들을 보면서 같은 패턴을 자주 봤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괜히 ‘삐끗’할까 봐 도전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의 회사, 평균 이상의 커리어만을 고르고 조금만 새로운 걸 하려 해도
“아니, 너 정도 스펙이면 더 안정적인 데 가야지” 이런 말을 주변에서 너무 쉽게 한다.
그 말에 갇히는 건 결국 당사자다.
남들이 만들어준 기대치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개수가 줄어든다.
사실은 세상에 수백 개의 길이 있는데, 마치 5개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성취해야 하고, 더 안정돼야 하고, 더 ‘괜찮아 보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20대의 특권인 ‘잃을 것이 없는 용기’를 누리기도 전에 상실해 버린다.
사람들은 고학벌 20대에게 묻는다.
“그래도 너는 좋은 대학 나왔으니까 잘 살잖아.”
하지만 정작 그 안쪽에서는 이런 생각이 깊게 내려앉아 있다.
“내가 잘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선택이 실패로 기록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괜히 이 스펙을 망가뜨리려는 건 아닐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고학벌이 ‘명품백’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게 조금은 씁쓸하지만 사실이라고.
있으면 남들에게 인정받고 “오, 대단하다”라는 말은 듣는다.
하지만 그 인정은 결코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명품백을 들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인생 전부를 성공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가방을 들고 있으니까 길바닥에 앉아 쉬는 것도 어색해지고,
빗물 튀는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도 불편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고학벌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이기도 했다.
그 벽은 남들이 만들어준 것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 내가 스스로 더 단단하게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한 가지 마음이 마지막에 남는다.
원망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고학벌이라 힘들다”는 투정도 아니고.
그냥… 감사함.
나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고, 그 과정에서 쌓은 시간과 노력들은 지금도 내 자산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성취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다.
분명 고학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기대의 무게에 눌리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고,
작은 실패에도 더 크게 흔들리는 나를 보면서 이 길이 과연 나에게 축복이기만 한가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고민이 가능했던 것 자체가 내가 그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벌이 모든 걸 보장해 주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그 시절 쏟아부었던 노력 덕분에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내 인생의 선택지가 늘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이루어냈던 성취들 속에는 내 노력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감사라는 감정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준 환경, 지켜봐 준 선생님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 작은 행운들.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에서 고학벌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함께 움직였던 힘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고학벌이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고학벌이어서 완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취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꺼내볼 수 있는 것이다.
압박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나의 일부였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질문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걸음을 내딛을 용기도 생겼다.
결국, 고학벌이든 아니든
가장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였다.
그리고 그 마음의 끝은 다시 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