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하고 뭐해?

생각만 하고 미뤄왔던 것들 전부 다요.

by Judy

나는 2025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의무교육과 그 과정 속에서 들인 내 노력을 인정받는 듯 꿈의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미래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도 내가 잘하는 것 계속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학위, 학벌, 시간 들여 한 모든 활동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그렇게 석사까지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3년 무렵 나는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고, 이렇게 한번 휘청이면서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뭔지 2023년부터 쭉 고민을 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생각의 길을 짧게, 시간 순서대로 설명해 보겠다.


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행복의 기준은 부모님이었다. 아니,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무남독녀)


어릴 때의 나는 내 전부인 나의 가족을 기쁘게 하는 게 곧 나의 행복이었고, 그래서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었기에 나의 행복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공부하는 건 재미없고 지루했지만, 초중고 공부는 (내 기준 대학 공부까지도) 암기만 잘하면 성적이 좋게 나왔다. (이건 앞으로 대한민국 교육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그런 나를 대견해하셨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니, 공부만큼 내가 들인 노력에 비례해서 보상해 주는 공정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를 하는 과정은 지루할지라도 결과물을 보며 항상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하지만 2022년 가족의 위기를 겪었고

이는 내가 세워놓았던 인생계획대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을 크게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면, 19학번인 나는 휴학 없이 학교를 다녔기에 2022년 4학년을 끝으로 대학원을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렇게 2023년 석사 1학년으로 입학하여 2025년 석사 졸업하고, 박사는 해외로 유학을 가서 척척박사가 되는 것, 그리고 운이 좋으면 교수가 되는 것이 나의 인생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2년,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더 이상 엄마아빠의 자랑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내가 공부하고 취업을 안 해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한테 짐이 될 수 있음을 느꼈을 때,

하기 싫은 공부를 부모님의 인정을 바라며 꾸역꾸역 해오던 내가 과연 단순암기와는 완전히 다른 대학원 공부(공부가 아니라 연구라고 하는 게 맞겠다)까지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

등 수많은 고민들이 나의 눈앞에 불현듯 닥쳐왔다.


나 같은 사람한테 overthinking은 독 그 자체였다.

나는 스스로를 걱정과 우울로 침몰시켰다.

겨울 영국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흐리고 파란 색감의 도시

그리고 나는 이러한 고민들을 계속하다가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도피하듯 돌연 교환학생을 신청했고, 2023년 초과학기에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대학원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준 이쁜 옥스포드

영국의 흐린 날씨며, 싸늘한 공기며, 이쁜 자연 풍경과 도시의 조화는 내 현실도피를 도와줬고 결국 나의 최애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애석하게도 내가 하다 떠난 고민은 어디 가지도 않고, 그대로 집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2023년 이후 나는 더 이상 나의 인생을 한국에서 가족을 위해 사는 것으로 한정 짓지 않게 되었고,

세상은 넓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현실에 발 붙이고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서 다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2022년부터 지속되어 오던 잠시 붕 뜬 듯한 그런 기분을 잠재울 수 있었다. 현실감각이 사라져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고, 더 이상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들지 않던 상태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초기 우울증 증상이었던 것 같다.


2023년 후 느낀 점은

1. 나는 해외에서 살고 싶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숨쉬기 편한 그런 도시. 한국의 서울은 그렇지 않은 도시다.

2.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그러한 배경으로 대학교 전공도 선택을 했던 것 같다.

3. 나는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울해진다.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겨서 결과를 눈으로 봐야 하는 성격이다. 머릿속으로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하면, 끝도 없이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국 겉으로는 티가 하나도 안 나고 성과도 없는데, 머릿속은 터져버리고 번아웃이 온다.

였다.


그래서 나는 2024년 미국 로스쿨을 도전했다. (갑분 미국로스쿨) 도전했던 이유는 이렇다.

1. 미국로스쿨을 한국인도 지원할 수 있음을 2024년에 처음 알았다.

2. 미국으로 가면, 위에서의 1번 조건인 해외에 살고 싶은 것 충족

3. 로스쿨을 가면, 3번 조건인 머릿속으로만 복잡한 게 아니라 실천에 옮겨서 현실 사회 속에서 일원으로서 기여를 할 수 있고, 현실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

4. 미국 로스쿨을 나와서 지적재산권 변호사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미술, 예술 창작권리 전문 변호사로 디즈니, 픽사 등 내가 정말 좋아하는 창작물을 만드는 회사의 일원으로 창작물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나는 LSAT을 공부하고, 졸업 준비를 하며 2024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2025년 2월에 졸업을 했다.

졸업스냅. 살면서 학위복 입고 사진을 언제 또 찍어보겠나 싶어서 큰돈 주고 찍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T16 미국 로스쿨을 외국인이 가기 위해서는 165점 이상이 필요했는데, 나는 155-160에서 성적이 더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교를 낮춰가기에는, 외국인으로 미국 로스쿨을 가면 학비가 3년에 3억 정도인데, 하버드 로스쿨을 가도 3억, 이름 모를 학교 로스쿨을 가도 3억이면, 투자비용 대비 아쉬움이 클 거라 판단했다.

(주변에 많은 법조인에게 조언을 구해보면, T16로스쿨을 나와야 억대 학비를 투자한 뽕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값진 조언들 뿐이었다.)

결국 나는 2025년 한국 로스쿨을 도전해 보는 것으로, 진로를 바꿨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로스쿨을 반대하셨다. 특히 한국 로스쿨은 더욱더 반대를 하셨는데, 그 이유는

1. 예전만큼 명예가 높지 않은 현 국내 법조인 전망과

2. 시급으로 따지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고

3. 판검사는 공무원 월급인데 더 이상 명예도 높지 않고,

4. 변호사는 이제 전문직이 아니라 영업직이 되었고

5. 네가 일하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범죄자, 피해자 등)이나 마주할 상황(분쟁, 조정, 범죄 등)들이 다 어둡고 슬프고 무서울 것이라는

아버지의 뼈저린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1. 일반 기업 취업은 내가 큰 그림을 볼 수 없고, 회사의 부품으로 도구화되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어 싫었고,

2. 문과가 갈 수 있는 다른 전문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3.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온 대학교 학벌을 노력으로 인정해 주고,

4. 배워두면 응용분야가 넓은 법을 공부하는 거고,

5. 비록 힘든 상황들을 계속 마주해야 하지만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과 행복을 느낄 것 같았고,

6. 자격증을 따는 게 대학 졸업 후 전공과는 무관한 아예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하는 나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더 늦기 전에 도전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리트를 봤다.


한국 로스쿨은 아직 나이주의(대학 졸업하자마자 로스쿨 가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경험을 하고 오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가 팽배하고,


한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로스쿨을 가면 미국로스쿨을 나온 후 미국에서 비자를 받지 못해 한국에 돌아와야 할 때도 한국 변호사 자격증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국 로스쿨을 먼저 가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리트를 쳤고, 현재는 로스쿨 면접을 준비 중이다.

비록 첫 리트치고는 아쉬운 성적이지만, 로스쿨 지원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 미술 유학도 준비 중이다.


이건 리트를 보고 나서, 로스쿨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느낀 나의 진정한 행복추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뜬금없이 미술?이라고 생각할게 뻔해서 엄마를 제외하곤 내 주변에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았다.(아직 아무런 결과도 안 나왔는데 남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설명하는 것은 입 아프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냥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로스쿨 면접 교재 일부 발췌

나는 로스쿨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의 대학생활과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로스쿨 자기소개서의 경우, 학교마다 구체적인 질문은 다르지만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동기와 로스쿨 졸업 후 법조인으로서의 계획을 묻는다.

주변에 로스쿨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한 동기라기보단 그저 전공에 맞게 스토리를 지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학 전공이면 공정한 경제활동이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거나, 어문학 전공이면 국제 변호사로 본인의 어학 특기를 살리고 싶다는 등)


그럼에도 나는 내 특유의 진지충 성격때문에 쉽게 써내려가지 못했고 진지하게 법조인으로서의 인생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나의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크게 그리고 깊게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스쿨 면접 준비를 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수능 선택 과목을 동아시아사, 사회문화로 선택하고 내신 과목으로도 윤리 과목을 선택해본 적이 없기에 여태컷 자유주의에 대해 깊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법은 1차적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으로써 존재한다. (물론 사회의 질서 유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은 어떤 자유를 갖느냐?

본인의 생명 신체에 대한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 주로 인권적인 측면에서의 권리를 갖고,

이러한 권리 추구를 위해 인간은 자유를 가지며,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형벌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근데 자유주의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말 그대로 외부의 어떤 압력도 없이 자유로운 선택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돈이 없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서 선택을 하는 것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복지를 통해 모든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갖게 도와주고, 협박으로 이루어진 계약은 민사법상 무효처리해 주고, 그런 거다. 어쨌든 이런건 로스쿨 가면 더 자세하게 배우겠지)

현재 내 폰 잠금화면이다.

나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나의 인생 가치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선물 주는 게 그 사람한테서 선물을 받는 거보다 더 행복할 때도 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극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어릴 때는 그 누군가가 우리 엄마아빠였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 엄마아빠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성적이 잘 나오니, 아 이게 내 길이구나 싶어서 동기부여가 되어 더욱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렇게 뿌듯함에서 오는 행복,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나의 행복이고 인생의 목표라는 점에서 변호사라는 법률대리인을 나의 천직으로 여긴 것도 있었다.

(머리 아프게 공부해서 엄마아빠한테 좋은 성적표로 행복 주기 = 머리 아프게 법공부해서 법률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람한테 법률 서비스로 도와주기+경제적/사회적 위신 = 개이득?)


그래서 나는 변호사가 되어도 잘할 자신이 있다.

어릴 때부터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에 관련된 철학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줄곧 해왔고,

법이라는 수단으로 누군가를 돕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나의 신조와도 일치한다.

(다만, 로스쿨 들어가기+ 로스쿨 들어간 후에 변호사시험 공부가 어려운 것이 걱정될 뿐이지......)

그런데 내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타인과 떼어놓고 오롯이 나 혼자 하면서 행복한 것은 미술이다.

만약에 내가 사회적 시선을 신경 안 쓰고, 돈 벌어먹고 사는 게 걱정이 안 되는 재벌 2세였다면 정말 일초도 고민 하지 않고 순수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나를 쓸모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한국 미대를 가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식 미술 입시에 나의 창작물을 평가받고 싶지 않았고 그 정도로 실기에 자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반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었지만 미술 입시판에만 가면 잘 그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고, 미술 학원의 설명이 납득되지 않았다.


가장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잘 그리는 것인가?

가장 색감을 잘 표현하는 게 잘 그리는 것인가?

무엇이 잘 그린 그림인지 모르겠고, 나는 나의 행복이 남들의 평가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미술은 그냥 나의 행복추구행위로 남겨두고, 객관적이고 확실한 정오답이 있는 공부(암기식 공부)로 대학을 간 것이다.


미대를 안 간 것에 나는 후회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공부를 하면서 억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제일 싫어하는 게 억울한 것과 입 아프게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되는 것이다.)

공부는 항상 정직했고, 모든 결과에 대해 납득이 가능했다.


그래서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미술로 나의 진로를 바꾸는 것에 회의감을 가졌었다.

미술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학업과 공부라는 배경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직도 자신 없고 무섭긴 하다)


근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찬찬히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들었다.


역시 한국문학번역원.. 인문학도의 통찰력은 남다르다.

사람 사는 거나 사회 돌아가는 거나 꼭 미술 같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될 수 있고,

내가 보기엔 완벽한데 남들이 보기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니까 공부를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다.


나는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해야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다.

좋아하는 것은 절대적이어서 그냥 좋아하면 끝이지만,

잘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왜냐하면 잘한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상위 10퍼센트에는 들어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상위 90 퍼센트면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상위 10퍼센트이던 집단에서 나와 더 잘하는 집단에 들어가면 나는 바로 상위 90퍼센트가 될 수 있다.

똑같은, 아니 더 노력하고 발전한 나여도 말이다.

좋아하는 것은 상대적이지 않다. 절대적이다. 누구보다 좋아한다? 이런 말은 없다. 그냥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답이 없을 것 같던 질문에 해답을 찾았다.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자.


그리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죽자.


그래야 내일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하고,

만약에 되면 그거를 계속 하면 되니까 좋은 거고,

만약에 안되면 별 수없는 거고, 하고싶은 다른 거 또 하면 된다.

“인생 별 것 없더라”가 모든 철학자의 공통 결론이다.

나는 그저 현재, 나의 상황에서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 다 도전해 보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내 인생 좌우명이기도 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인생목표로 삼던 대학교를 들어와 보니 알겠더라.

대학교만 들어오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아니더라.

대학교에 들어오니 더 큰 물에서 더 열심히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계속 나를 증명해야 했다.


초중고 내내 공부를 하는 게 즐거웠던 이유는 내가 잘하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성적표와 상장은 나의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물이었고, 나는 그것들로 내 노력의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마라톤의 결승선일 줄 알았던 대학교에 입학해보니, 내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공부에 끝은 없고, 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생존게임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가족도 더 이상 공부만 잘하는 딸은 원치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나아가야 할 목표와 인생의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에 떠도는 공허한 나의 고통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방향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이제부터는 부모님 눈치 안 보고, 망할 것,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었던 것 다 도전해 볼 수 있다.

다음 주에 있을 로스쿨 면접부터,

1월 지원마감인 미술 유학 준비까지

나는 최선을 다할 거고 하늘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다.


이게 곧 인생이고 행복을 추구할 나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선택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