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위안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추어탕이다.
뜨거운 뚝배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와 함께 코끝을 간지럽히는 구수한 향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을 끌어내고, 바쁜 일상에 잠시나마 쉼표를 찍게 한다.
처음 추어탕을 만났던 기억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늦가을, 나는 엄마손을 잡고 시골 친척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마도 특별식으로 준비한 마당에서 미꾸라지가 담긴 독을 보게 되었다. 까만 물 속에서 꿈틀거리던 미꾸라지들은 뭔가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그 광경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식탁 위에 올려진 추어탕을 보고도 그것이 마당에서 본 미꾸라지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따뜻한 국물의 깊은 맛과 들깨가루가 어우러진 부드러운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 맛은 친척 모두가 별식으로 먹으니 거부하지 않는 맛으로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 추어탕이 낮에 보았던 미꾸라지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몸이 오싹했지만, 이미 배불리 먹은 뒤였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미꾸라지가 음식으로 변하는 과정을 낯설게 느끼게 했지만, 동시에 추어탕이 가진 깊은 맛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추어탕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맛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쌀쌀한 계절이 되면, 추어탕은 내게 추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 중에서도 추어탕은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국물을 끓이는 데 필요한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그 맛은, 마치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 뚝배기 속 국물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오랜 시간 푹 끓여낸 국물에는 단순히 미꾸라지의 맛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성과 기다림의 산물이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손길이 떠올랐다. 당시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그 음식이 내 마음속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얼마 전, 한 동료가 추어탕이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추어탕은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고, 그 맛과 비교하면 대부분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동료의 추천을 받은 그 식당에서 만난 추어탕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뽀얀 국물이 담긴 뚝배기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한 모금 떠먹는 순간, 국물 속 깊이 배어든 맛이 내 입안 가득 퍼졌다. 들깨가루의 고소함, 부드러운 미꾸라지 살, 그리고 칼칼하게 입맛을 돋우는 산초가루의 조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했다. 동료와 함께 나눈 대화와 그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날 먹은 추어탕은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따뜻한 추억이었다.
추어탕은 나에게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특별한 친구와도 같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그리워지고, 추운 날씨에 더욱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뜨겁게 펄펄 끓는 국물을 입에 넣으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마치 따뜻한 담요를 몸에 두른 것처럼, 추어탕은 나를 감싸 안아준다. 그 온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나 자신을 되찾게 만든다.
추어탕이 가진 매력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 가족과의 추억,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 그리고 내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추어탕을 먹으며 떠오르는 기억들은 모두 따뜻하고 소중하다.
지금도 나는 추어탕을 좋아한다. 그것은 나를 보양식으로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 고향의 흙냄새, 어머니의 웃음소리, 그리고 가족과 함께했던 따뜻한 식탁의 풍경이 그 뚝배기 안에 녹아 있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마당에서 보았던 미꾸라지가 떠오르고, 그날 저녁 친척들과 모여서 제법 많은 식구들과 지냈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사촌들과 넓은 시골마당에서 뛰놀던 추억과 사랑이 느껴진다.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를 변화시키고, 내 마음속 빈 공간을 채워준다. 그 따뜻함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나는 이 특별한 한 그릇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추억과 함께 나는 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쌀쌀한 날씨가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추어탕을 먹는다. 그것은 단순히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데워주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릴 적 마당에서 보았던 미꾸라지의 거품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삶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따뜻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추어탕은 고스란히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