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부성에서는 ‘일본어교사의 역량강화’라는 취지로 전 세계의 일본어교사를 선발 초청해 한 달간 연수를 시켜준다. 난 2005년7월과 8월에 걸쳐 연수를 받게 되었다.
다양한 교육연수 커리큘럼 중 ‘탐방해 보고 싶은 곳’을 다녀오는 일정이 있었다. 나는 일본어교사인 관계로 다른 무엇보다도 후지산은 꼭 다녀오고 싶었다. 후지산등반동아리를 만들고 마음에 맞는 6명이 함께하기로 했다. 그중 광주 모여상의 한 분 선생님은 천식이 있어서 五合目(2,400m) -후지산 높이를 10개의 구간으로 나눠서 이를 十合目(정상 3,776m)이라고 한다- 까지는 동반하고 나머지 5명은 정상을 정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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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6m의 고산은 처음인지라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시작하면 해 내고야마는 나인지라 의견을 모으고 역할을 나눠 일정을 정리하고 계획을 마무리했다.
출발하기로 한 전날 밤 폭풍우가 몰아쳐 계획을 취소하려고 했으나 이번기회가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았다. 폭풍우가 계속되면 후지산 근처 역까지만 갔다 오기로 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보니 다행히 폭풍우가 멈춰 새벽 4시경 키타우라와 역(北浦和駅)에서 첫차를 타고 대장정에 올랐다. 전철을 5번 갈아타고 가와구치호(河口湖)에서 1시간가량을 버스로 달려 五合目(2,400m)에 도착해 일정을 시작했다.
후지산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나무는 물론 풀도 자라지 않고 물도 없는 죽음의 산 같았다. 당일치기인 관계로 출발 때는 4분의 선생님을 앞에 두고 난 맨 후미에서 독려하며 七合目(2,780m)까지 갔다. 지치고 힘들어하길래 이런 속도라면 도중에 하산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선두로 일행을 끌기 시작했다.
八合目(3,200m) 도착하기 전 3,000m 지나니깐 비행기 이륙 후 조금 지나면 귀가 윙 거리고 멍해지는 그런 상태의 귀가 먹먹해지고 순간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처했다. 잠깐 멈춰 앉아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아이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우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나라 부모 같으면 가서 안거나 업고 올라갔겠지만, 그 부모는 아이가 울기시작하자 10여 m 앞으로 앞서 가더니 ‘00 ちゃん! おいで! おいで!(00야! 이리 와! 이리 와!)’하며 독려했다. 그러자 아이가 울면서 부모한테 가는 것이었다. 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지나쳐 가면서 그 순간은 매정한 부모라고 생각했었다. 걸으면서 그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그 아이가 ‘스스로 후지산에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일 것 같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지금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으리라. 청년이 된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를 생각하며 후지산에 오른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서둘러 정상을 향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十合目(정상 3,776m) 정상에 당도했다. 8월 13일로 산 아래는 여름의 절정기였는데 꼭대기는 우박과 비가 섞여 내리는 추운 날씨였다. 만년설이 조금 남아있는 분화구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곳으로 이동해 소주 한 잔씩을 나눠 마시고 ‘나! 여기 너를 정복하고 간다’는 징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