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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보우보 Feb 13. 2024

서울은 한눈팔면 코 베어 가는 세상

서울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어 일거리가 많아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상경했다대부분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순진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기꾼 때문에 조심하라는 뜻으로 서울은 한눈팔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시절이었다.

      

흥분과 기대불안과 걱정미지의 세상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으로 11시간 정도 걸려 완행열차(나중에 비둘기호로 명칭 변경됨)를 타고 전라남도 시골에서 서울로 고때 전학을 왔다

     

첫날 “000입니다잘 부탁합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개하고 담임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짝꿍은 서울 토박이로 시골뜨기인 나를 서울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마포에 있는 아이스하키 명문고이다학교서 단체로 응원을 갈 때면 각자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야 했는데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나를 챙겨 데려가 주었다친구 덕에 학교생활 등 서울살이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녔다여름방학 때 수련회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다대사를 외우기는 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처음 해 보는 연극이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잠깐 정적에 쌓였다그때 친구가 살짝 알려 줘 위기를 면한 기억이 있다늘 함께했고 시골에서 자라 세상 물정 등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잘 챙겨줘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가기 하루 전날 나랑 약속할 것이 있다담배는 수학여행에서그리고 입대해서 배운다는 말을 어른들에게서 들었는데 우리 영원히 담배는 피우지 말자!”라고 했다그 언약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난 대학에 바로 입학했다친구는 재수하고 다음 해에 서울의 명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대학교가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여서 자주 만났다친구가 2학년이 되고 난 군에 입대했다.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화곡동의 지가가 비쌌다친구는 화곡동의 마당에 잔디가 깔린 단독주택에서 살았었다자주 방문했고 식사도 하고 마당에서 운동도 하곤 했다군 말년에 친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마포의 허름한 지하 방이었다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초대한 친구의 모습을 보고서 나였으면 아마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을 텐데...... 의외였다 

    

전역 후 난 복학했고 그 친구는 군 면제를 받고 대학원에 입학해서 만남이 소원해졌다난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결혼을 바로 한 관계로 그 친구와의 연락은 끊기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15년이 지난 시점에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부풀었지만친구는 오지 않았다동창들에게 수소문했지만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 후 3년 지나 동창회에서 친구의 이 세상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평소 간염이 있었는데 그로 인한 것이었다죽음이라는 단어가 야속했고 학창 시절의 내 추억을 나눌 친구의 실종이 아픔으로 다가왔다그 이후 난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은인이며 멘토였고 혈혈단신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나의 벗이자 선배 역할까지 도맡아 준 친구 김영배’ 깡마르고 큰 키에 미소로 대해 준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배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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