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장발장을 읽으며 도대체 자베르라는 사람은 왜 불쌍한 장발장을 괴롭히는지 참 궁금했었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인지, 또 왜 그렇게 집착이 심한 것인지, 참으로 독한 악역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읽는 내내 나는 그런 자베르가 얄미웠고 그래서 그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대목이 나왔을 때 ‘그래. 결국 죽는 인생, 아무 부질없다고. 평생 장발장만 쫓아다니며 괜히 인생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무도 자베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나처럼 그저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20대가 되었고 어느 날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극 중 주인공인 장발장에게 몰입하며 보았다. 그리고 자베르가 스스로의 몸을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암흑 속으로 던지는 장면을 보고는 생각했다. ‘제발 불쌍한 장발장이 좀 행복하도록 놔두지, 왜 죽는 순간까지도 그를 못 잡아서 저렇게 안달일까? 결국 홀로 쓸쓸하고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을.’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부분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지만 단순히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등장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넘겨버렸다.
시간이 또 흘러 30대가 된 어느 날, 동생 J와의 대화 도중 우연히 장발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J가 말했다.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자베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어.” 우리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에 자베르의 최후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뮤지컬 ‘자베르의 독백 (Javert's Soliloquy)’이라는 곡이 나왔다. 분명 뮤지컬을 보았을 때 들었던 곡이었다. 우리는 그 곡을 함께 들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처음 이 뮤지컬을 보며 자베르의 최후 장면에서 느꼈던 그 위화감의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베르가 마지막 대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 연주가 흘러나오는데 이 음악 연주는 그가 뮤지컬 중반부에서 부르는 ‘별’ (stars)이라는 곡의 일부분이었다. 내가 위화감을 느낀 이유는 자베르가 온전한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순간에 왜 하필 그가 그의 신념을 담아 부른 ‘별’이라는 곡의 웅장한 부분을 넣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작곡가는 이 장면의 이 순간에 이런 음악을 넣었지?’ 나는 의문을 갖고 이번엔 영문 가사를 읽으며 다시 그 곡을 들어보았다.
The world I have known is lost in shadow.
내가 알던 세계는 어둠에 잠겼다
Is he from heaven or from hell?
그는 천국에서 아니면 지옥에서 왔는가?
And does he know
그리고 그는 알까
That granting me my life today
오늘 나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This man has killed me even so?
나를 더욱더 죽음에 가까이 데려갔다는 것을?
I am reaching, but I fall
나는 닿는다, 그러나 곧 떨어진다
And the stars are black and cold
그리고 별들은 어둡고 차갑다
As I stare into the void
나는 내가 붙잡을 수 없는
Of a world that cannot hold
공허의 세계를 바라본다
I'll escape now from that world
나는 이제 그 세계에서 벗어날 것이다.
From the world of Jean Valjean.
장발장이라는 세계에서.
There is nowhere I can turn
더 이상 내가 의지 할 곳은 없다.
There is no way to go on!
더 이상 갈 길은 없어!
<자베르의 독백 (Javert's soliloquy) 중에서>
그러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자베르의 생각과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항상 장발장의 눈을 통해서 이 작품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단숨에 자베르의 눈으로 보게끔 만들어주었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악역으로만 믿어 의심치 않던 자베르, 20대에는 그저 홀로 씁쓸한 최후를 맞는 자베르, 그리고 지금 30대가 된 나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자베르라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에 대해서, 나는 지금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 곡의 가사들을 읽으며 천천히 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가사를 읽음과 동시에 곡 "별 (stars)"의 웅장한 일부분이 연주되었다. 엄청난 여운이 몰려왔다. 분명 수없이 많이 들어본 이 곡인데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여운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러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북받쳐 올라와 순간 머리가 어질 해져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내 눈앞에는 자베르가 서있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방금 들은 곡 ‘자베르의 독백’을 지금 내 눈앞에서, 마치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서서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 등을 돌린 채 자신 앞에 펼쳐진 아득히 먼 어둠 속을 바라보며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미세하지만 그의 손에 매달린 그의 손가락들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데 그 순간 휘청, 그의 온몸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순간 나는 그가 떨어질까 봐 재빨리 그에게 달려가 양팔로 그의 다리를 굳게 잡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힘이 그를 더 크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다리에 매달리며 우리의 무게 중심을 그의 뒤로 향하게 안간힘을 썼다.
휴... 다행이다. 그도 떨어지지 않았고 나도 무사했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이마의 땀방울들을 닦았다. 그리고 옆에서 나를 당황한 듯 쳐다보는 자베르의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당황함이 아니라 짜증과 분노였다. 그는 나를 한번 쏘아보더니 내게 등을 돌리고 다시 난간 위에 올라섰다.
다시 내 심장박동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도대체 이 사람 제정신인가? 왜 하필 내 앞에서 이러는 것인지? 왜 내 앞에서 죽으려는 것인가?’ 나는 그가 나를 뒤돌아볼 때까지 다급히 그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서 내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냐?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데? 나랑 무슨 상관인 것이냐?”
나는 다급한 마음에 횡설수설하며 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래요. 저는 당신과 아무 상관없어요. 그래도 제 앞에서 제발 죽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니, 사실 상관이 있어요. 당신은 나를 전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알아요! 안다고요!”
그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허겁지겁 말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정말 힘드시겠지만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알아요. 그래서 지금 당신이 왜 그곳에 서 있는지도 어느 정도 알아요!”
“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것을 안다는 것이지?”
“그... 그건 설명하기 좀 어려워요. 아마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근데 중요한 건! 저는 지금 당신의 심정을 알아요. 이해한다고요.”
“이해? 네가 감히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한다고?”
“네!!! 감히 제가 자베르,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고요.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분노, 그 억울함, 그리고 괴로움을! 바로 당신 앞에 서있는 저라는 인간이 이해한다고요!”
“거짓말하지 마!!! 누가 너를 보냈느냐? 설마 장발장이 끝까지 나를 괴롭히려고 너를 내게 보낸 것이냐?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싶단 말이냐? 얼마나 더 나를 괴롭히고 싶단 말이냐!”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저는 장발장이 보낸 인간이 아니라 그냥... 그냥 어쩌다가 지나가던 인간... 아니... 그냥 어떤 인간이에요. 당신과 장발장과 전혀 관계없는...”
“전혀 관계없다면 나를 내버려 두고 어서 이곳에서 사라지거라!”
“아아 안돼요!!! 그건 절대 안 돼요! 저는 당신이 지금 그 난간에서 내려올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거예요!”
그리고 나는 흐느낌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자베르. 저에게 1분이라도... 딱 1분만이라도... 제발 시간을 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꼭 해줄 말이 있어요.”
“... 그것이 무엇이냐?”
“당신은 별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 그리고 그 별들을 바라볼 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을 거예요. 그 순간만큼은 당신은 자유로웠죠. 더 이상 장발장도, 어린 시절 기억들도,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말이에요. 당신도 분명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할 거예요. 행복했던 그 순간을! 저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당신은 분명 행복해질 수 있어요. 다시 그 별들을 바라보며 그 행복했던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다고요!”
“...”
“저는 살아서 당신이 그 별들을 다시 한번만이라도 바라보며 그 행복을 느꼈으면 해요. 당신이 그 별들을 바라보며 부른 노래가 저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요. 전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슬프지도, 괴로워하지도 않고 그저 별을 노래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것뿐이에요. 솔직히 당신은 그저 장발장을 괴롭히던 악역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당신 이야기의 주인공이니까요.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당신이 지금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고통스러워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그 난간에서 뛰어내려서 장발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가버리고 싶은 마음도, 더 이상 당신 앞에 그 어떤 길도 없다고, 오직 이 길 밖에 없다고 느끼는 것도... 저도 알고, 저도 다 느낀다고요. 그 아픔과 그 두려움! 하지만 자베르,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당신이 지금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해서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 고통과 괴로움, 분노가 사라질 것이라 믿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왜냐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에 살아있기 때문이에요. 육체의 고통은 끝날지 몰라도 불쌍한 당신의 영혼은 계속해서 고통받는다고요! 영원히! 지금보다 더 괴로울 수 있다고요!”
“헛소리 마라! 네가 죽어보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내가 네말을 어떻게 믿지? 아니, 왜 믿어야 하지?”
“몰라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절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죽던 살던 자베르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요! 제발, 이제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요! 그 오랜 시간 행복하지 못했던 당신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겨우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 사실도 모르고 그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느끼는 분노, 고통, 그리고 괴로움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새로운 시작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제발... 한 번만 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세요. 살아갈 기회를...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가, 감히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신이 그 난간에서 내려오면 우리 같이 손잡고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가요. 지금 당장. 제가 당신과 함께 갈게요. 그러니... 제발 제 손을 잡고 그곳에서 내려오세요.”
“...”
“그리고 전 알아요. 장발장은 당신을 증오하지도, 당신이 불행하기도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제가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아요. 분명 이 세계 사람들도 그런 마음일 거예요. 그러니 자베르, 제발 제 손을 잡고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제가 당신의 삶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제발!!!”
자베르는 그를 향해 뻗은 내 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눈물을 흘리는 내 얼굴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의 발아래 마치 자신을 순식간에 삼켜버릴 듯 크고 어두운 암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자.. 베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애처롭게 불렀다. 얼굴을 타고 흐르던 눈물들은 말라버렸고 목은 따끔거렸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는 순간.
탁!
그는 손을 뻗어 있는 힘껏 나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온 힘을 다해 내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곤 우리 둘 다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허공엔 거친 숨소리가 퍼졌다.
“아... 하... 하... 하하”
무슨 소리지? 생각하며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려 자베르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이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우린 한동안 그렇게 소리 내어 웃었다. 새까만 밤하늘 속에서 우리들을 비추는 수많은 작은 별들을 바라보며. 우린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닿았다. 그의 눈에서 작은 별이 보였다. 크기는 아주 작지만 앞으로 찬란하게 빛나게 될 작은 별의 아기 별빛이 어느새 내 가슴을 따뜻하게 환히 메웠다. 오늘 밤은, 참 아름다운 밤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동생 J가 좋아하는 Earl Carpenter 님이 부른 Stars와 Javert's Soliloquy를 들으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