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릴 적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 중에 어릴 적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파에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파에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아버지의 전차를 몰고 하늘의 궤도를 벗어나 달리다가 태양의 불로 지상을 불태웠기 때문에 제우스가 벼락을 쳐서 죽였다. <네이버 사전>
파에톤은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헬리오스에게 신만이 모는 태양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는 태양 마차를 몰다가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죽음에 이른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그의 누이들은 나무가 되어버린다. 내가 어릴 적 이 이야기를 읽고 받은 충격적인 메시지는 ‘인간은 가질 수 없는 신의 것을 탐내면 결국 벌을 받는다’라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파에톤은 태양 마차를 타다가 죽음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에는 주인공 파에톤과 함께 파에톤을 말리는 태양신 헬리오스, 그리고 파에톤의 죽음을 슬퍼해 나무로 변해버린 그의 누이들이 보였다. 마음이 잔잔히 아려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초능력을 이용해서 파에톤에게 어느 순간 닿을 수 있다면 과연 그의 삶은 바뀔 수 있었을까? 그리곤 곧 나만의 상상을 펼쳤다.
파에톤은 자기 스스로와 온 세상,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는 태양신 헬리오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강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을 간곡히 만류하는 헬리오스 신을 뿌리치고는 기어코 태양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황금빛 마차 줄을 잡으려 떨리는 자신의 두 손을 천천히 움직이는데...
"흐흐흑..."
순간 파에톤의 귓가에 익숙한 사람들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의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그 사람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리고는 그 흐느끼며 슬퍼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랑하는 자신의 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 옆에 놓인 어떤 것에 시선이 갔다. 그곳엔 온몸이 검게 그을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이 뉘어있었다. 그 그을린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 뒤로 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헬리오스 신의 슬픔과 비통함에 찬 얼굴도 보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차가운 바닥에 미동 없이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신의 양손에 난 검붉고 깊이 파인 자국들에게서...
파바밧!
그 순간 파에톤은 손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서둘러 주위를 살펴보았다. 옆에서 아까처럼 자신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헬리오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몸을 싣고 있는 태양 마차의 황금빛 마차 줄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황급히 마차에서 내려와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의 집으로. 심장이 터질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그는 멈추어 섰다. 멀리서 그의 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그들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려지던 심장이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그들의 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자신을 보고는 저마다 크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이렇게 해맑게 웃는 자신의 누이들에게. 그의 누이들이 서둘러 달려와 그를 함께 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괜찮다 말해주며. 괜찮다고. 정말 다 괜찮다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마치 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말이다.
그 후 파에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난 왠지 그의 삶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저 보통 일상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컷 울고 긴장도 풀린 파에톤은 곧 엄청난 허기가 느꼈을 테고 일단 집에 들어가 일단 밥을 배부르게 먹지 않았을까?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엄청난 졸음이 몰려와서 자신의 몸을 끌다시피 해서 침대에 몸을 맡기고 깊은 잠에 빠져버리겠지.
이런 모습을 상상하자 난 파에톤이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파에톤뿐만 아니라 파에톤을 향한 그의 누이들과 헬리오스 신의 모습들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그들마저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안에 파에톤과 그의 누이들, 그리고 헬리오스 신의 모습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마음고생을 할 때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던 모습.내가 혹은 그들이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서 괴로워할 때 옆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슬퍼하고 서로 위로해주던 모습. 살면서 누구나 겪어보았을 그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에.
그렇지만 파에톤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제 태양 마차에 탔고, 언제 심장이 터질 듯 누이들을 향해 뛰었고, 또 언제 그렇게 펑펑 울었는지. 모두 아스라이 먼 기억인 듯 잊어버리고 살아가지 않을까? 때로는 아침부터 누이들과 다투고 소리도 지르고, 그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 이내 마음을 풀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수다도 떨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피하기 위해 잔머리를 쓰지만 결국 그 일들을 하고 마는.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풀썩 쓰러져 잠을 청하는. 굉장히 친근한, 그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그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아마 이것이 헬리오스가 내다보았던 것이 아녔을까? 파에톤의 한순간 선택의 변화로 실현될 수 있는 그의 소중한 일상.
나는 생각했다. 나 또한 그저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기어코 태양 마차에 손을 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나를 위해 슬퍼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혹은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나의 욕심을 실현하기 위해 마차에 몸을 싣고 그 황금빛 마차 줄을 향해 손을 뻗었던 적이 없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파에톤의 일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일상을 살아가는 파에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과유불급. 지나친 건 아니함만 못하다고.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욕심, 혹은 욕구가 자신이 평생 후회할 만한 선택의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은 그 태양 마차의 황금빛 마차 줄을 잡기 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곤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네 일상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너는 결코 그것을 잃어버린 후 뒤늦게 깨닫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나는 새로운 기회를 얻어 일상을 살아가는 파에톤의 희로애락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일상의 소중함은 항상 잃어버린 후 뒤늦게 깨닫는다. 마치 사람과 사랑의 소중함을 항상 잃어버린 후 뒤늦게 깨닫는 것처럼.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일상, 나의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과연 나는 이 모두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고 소중히 대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파에톤에게 대답한다. 나 또한 나의 일상과, 나의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매일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자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의 90번째 글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글입니다. 제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파에톤의 이야기로 한번 담아보았습니다. 약 한 달 반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들을 쓰고 싶어 하는지, 또 어떤 글들을 쓰면서 즐겁고 재미있는지요. 혼자 웃고 울고 고민하며 써 내려간 글들 속에 제 마음 조각들이 송송 담겨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제 스스로가 힐링받고 있음 또한 깨달았습니다. 읽는 분들의 마음에도 힐링이 되길 바라며 쓰고 있습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들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