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의 음악: Adagio in D minor

by 이제은




어느덧 서른이 되어버린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느 날 내가,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야 한다면...


과연 나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내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그리곤 곧 내 마음은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두려움에 압도되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에 갇힌 듯한 괴움을 느끼며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조각조각 부서저 끝내 무너져내리는 듯 고통스러웠다. 무엇이라도 잡지 않으면 그 검은 심연에 빨려 들어가 다시는 빛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두려움도 느꼈다.



하지만 만약에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분명 그 거대한 고통의 빙산의 아주 작은 일각일 것이란 것을. 나는 선명히, 그리고 또렷이 알고 있었다.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막고 싶은 고통 두려움의 대상.






어느 날 동생 J가 저녁을 먹으며 내게 물었다.


“당장 내일이 멸망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예전의 나라면 분명 그 상상만으로도 혼자 머릿속으로 무시무시한 생각들을 하며 엄청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코로나로 인해 맞딱 드린 많은 변화들을 뎌내기 위해 시작한 명상을 하며 많이 라진 내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나의 대답도 함께 변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조금도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후회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매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온전히 전하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왔기 때문에. 그 어떤 무한한 존재의 축복이 있기에 가능했던 선물 같은 내 일상들 속에 나는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고 노력해왔으므로. 그렇기에 나라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은 내 앞에 다가오는 그 어떤 것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아닐까? 내 두려움까지도 모두 껴안.



만약 우리들이 스스로의 두려움까지도 껴안고 그 마음마저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자세를 가진다면. 그렇게 매일 우리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매일 새롭고 아름다우며 경이로운 신비의 연속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신비로움을 나의 글로 통해서 다른 이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다가오는 멸망 앞에서 겸허히 그리고 담담히 계속 글을 쓸 용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도 나무를 심겠다는 어떤 철학자처럼 말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






John Murphy의 Adagio in D Minor를 듣다가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동생 J는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우주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하네요. 이런 웅장한 음악들을 들을 때면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생각들은 가라앉고 무언가 더 거대한 존재 혹은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관점의 변화가 생깁니다. 마치 현미경 안만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도 둘러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것이죠. 가끔 망원경으로 더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함으로써 나의 생각의 주체가 오로지 '나' 만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과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이 될 수 있겠지요. 잠시라도 이런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 후에는 내 안의 수많은 잡념들과 감정들이 한층 누그러짐을 느낍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집니다. 괜히 미소도 지어집니다. 오늘도 음악을 들으며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다가오는 일주일을 준비합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되 가끔 주위도 둘러보고 하늘도 한번 바라보는 여유를 잊지 않기들 바라며. 다들 좋은 일요일 밤 보내세요.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