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해진 날씨에 발코니로 나가 귤을 하나 까먹었다. 내 주먹보다 작은 주황색 귤은 적당히 달고 또 적당히 셨다. 우물우물 귤을 씹으면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그사이 새록새록 피어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혼자서 쉬지 않고 날개를 퍼덕퍼덕 거리며 발코니 위로 날아가는 새도 보았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선가 바쁘게 각자의 일들을 하고 있겠지. 나는 저 멀리 날아다니는 새들과 연두 잎들로 풍성하게 한껏 머리를 장식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남은 귤을 모두 먹었다. 꿀꺽. 혀 안쪽에서부터 달달한 끝 맛이 느껴졌다. 괜히 입맛을 여러 번 다시고는 손에 남은 귤껍질을 바라보았다. 불가사리 모양이 된 주황색 귤껍질에서는 귤 냄새가 났다. 버리기 아까워 탁자에 올려놓았다.
귤껍질은 과즙이 가득한 귤이 자신을 떠나갔어도 좋은 향기를 간직했다. 그리고 그 좋은 향기를 지닌 불가사리 모양의 귤껍질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오늘은 분명 쉬는 날인데 이런저런 생각들에 머리는 계속 일을 해서 그런 것일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거리를 찾는 뇌에 어떻게 쉼표를 줄 수 있을까. 산책도 나가고 요리도 하고 책도 읽고 색칠도 해보았지만 뇌의 도르래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그래. 마음대로 하거라." 비록 내 몸의 일부이지만 어쩌면 뇌도 자신만의 의지가 있나 보다 싶었다. 나는 이내 체념한 후 귤 하나를 집어 발코니로 나간 것이었다. 지금은 불가사리 모양의 주황색 귤껍질로 남겨진 적당히 달달하고 또 적당히 셨던 귤. 다시 한번 귤껍질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후우. 마음이 아까보다 더 차분해진 듯했다.
귤껍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아침에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 마음은 결국 하나라서 네가 신경 쓰고 집중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어있어.
부모님께서는 내가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을 내심 걱정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 보니 밤 9시 반이나 10시밖에 안되었는데 내가 곯아떨어지는 것이 걱정되셨을 것이다. 또한 거의 매일 한 개 이상의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이 다소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야."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부모님의 걱정의 눈빛들과 목소리들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괜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더 열심히 증명해 보여야겠다 라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것은 나의 글쓰기 실력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다작 능력이었을까?
아침에는 그저 듣고 넘겼던 엄마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내 마음에도 다시 평정심이 찾아와서 일까. 엄마는 말씀하셨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마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 눈 앞의 대상만 눈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듯이. 혹시라도 내가 글에 너무 몰두해서 맡은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지는 않도록 일과 글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오늘 아침 동생 J 또한 나에게 비슷한 말을 하고 출근을 했다. 나는 영감을 받으면 바로 글을 쓴다. 그리고 바로 그 글을 올리고 싶어서 (나누고 싶어서) 동생 J에게 보여주곤 했다. 옆에서 초조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보며 그동안 아무 말 없던 J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Good (좋음)에서 Great (최고)가 되려면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해. Good에서 만족하지 않고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너는 분명 Great을 만들 수 있어.
최근 들어 글을 쓰고 난 뒤 알 수 없는 갈증이 몰려오곤 했다. 분명 잘 쓴 것 같은데... 도대체 이 갈증의 근원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겉이 아니라 그 안 깊숙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갈증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이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 아니면 그들의 인정을 통해서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 것인가? 그렇다면 왜 나는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일까?
그래. 나는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가족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아닌 내 글들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했다. 내 글들로 결국 나의 일부인데 왜 꼭 글들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애초에 인정을 받는다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갈구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정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부모님과 동생 J 모두 내가 쓴 모든 글들을 항상 정성스럽게 읽어주는 나의 소중한 독자들이다.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들을 그동안 나는 내 안에 타오르는 글에 대한 열정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듣지 않았었다. 이제는 귀와 마음을 열어 그들의 조언을 새겨듣는 노력을 해야겠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또한 내 글의 수준/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 "아... 이것이 아빠가 말씀하신 도약의 준비단계이구나." 내가 한 단계 더 높게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질풍노도의 시기. 말 그래로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속을 지나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것일 테니.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 글들도. 그전에 먼저 스스로를 인정해주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은 불가사리 (Starfish) 모양의 귤껍질을 보며 스스로에게도 ★★★★★을 많이 주어야겠다!!!
질풍노도: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 (출처: 네이버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