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질들

오늘의 책: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 나태주

by 이제은




방을 정리하다가

예전 어느 여름날

바닷가 모래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주웠던

조개껍질들을

발견했다



내 엄지만큼

조그마한 껍질들을

손끝으로 만져본다

단단한 겉면에는

오랜 시간 파도와

모래와 태양빛에

바랜 흔적들이

가득하다



천천히

그 흔적들을

손끝으로 훑으니

그동안 쌓였던

조개껍질들의

긴 시간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이 조개껍질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먼 옛날

먼 어느 나라에서

태어난 조개들이

넘실거리는

파도들을 타고

이 먼 곳까지 온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을 지나

이 먼 곳까지 와 준

작은 조개들이

참 고맙다


내 엄지만큼

조그마한 껍질들

그 안에 살았던 조개들,

너희는 가버렸지만

너희들은

아름다운 흔적들을

남기고 떠나갔구나



훗날 나도

가버리게 된다면

너희들처럼

아름다운 흔적들을

남기고 떠날 수 있기를.



어느 여름날

누군가

모래 속에서

찾아내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그런 흔적들



어느 봄날

누군가

쓰다듬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흔적들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오랜 시간 파도와

모래와 태양빛에

바랜 흔적들이

가득한 껍질들을

남기고 떠난

그 조개들처럼



나 또한

나를 감싸고 있는

이 껍질들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저 먼바다로

넘실거리는 파도 속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후회 없이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추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기약하며






이 지점에서 나는 생각해보곤 한다. 시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우선은 언어 예술가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서비스업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서비스업자 말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많이 힘들고 지쳐 있다 하지 않는가! 그들 옆에 보다 가까이 서서 그들을 위로해주고 부추겨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새로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 <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나태주 > 중에서


나태주 시인님의 산문집을 읽으며 제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나태주 시인님, 저도 시인님과 같은 소임을 갖고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부추겨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힘들고 지쳐있는 누군가를 항상 생각하되 가장 먼저 제 스스로를 잘 돌보겠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따뜻함과 연민의 마음이 가득 차올라 제 눈빛에도, 제 목소리에도, 제 글 속에도 그 따뜻함이 그대로 담길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스스로를 정성스레 돌보겠습니다. 시인님의 귀중한 글, 온 마음을 다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