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잘 자요

오늘의 책: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 나태주

by 이제은


쉬는 날에는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13시간의 시차

나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부모님의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


가끔씩 통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침묵이 흐른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바스락바스락 소리

또 이따금씩 들려오는

엄마의 잠긴 목소리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전화기 넘어

스르륵스르륵 감겨오는

천근만근 눈꺼풀과

사투를 멈춘 엄마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주 조그맣게

"엄마... 자...?"

여러 번 물어도

돌아오는 소리는

고요한 숨소리뿐일 때까지.


평소에는 살며시 버튼을 눌러

통화를 종료하곤 하는데

오늘따라 그 버튼이

쉽사리 눌러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흘러

새근새근 잠이 드는

엄마의 숨소리를

전화기 넘어 듣게 되는 날이

내게 온 걸까


시간아, 부탁할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좀 천천히 가주렴.

부탁할게.

조금만 천천히...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시간은 야속하게

계속 흘러간다.

지나간다.


괜히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오른다

혹시라도 곤히 잠든

엄마가 깰까 봐

서둘러 버튼을 눌렀다.


아침에 읽었던

나태주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글이

떠올라서 그런 것일까


아들아, 잘 가

"어머니, 저 갈게요. 그저 마음 편히 계셔요."
늘상 그렇게 하던 이별의 의식이다. 그때 어머니의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 나왔다.
"아들아, 잘 가."
매우 힘이 없는 목소리. 나는 그 소리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날 때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그렇게 하던 인사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녕히 계셔요"와 "잘 가"로 바뀌었다. 과거의 인사가 재회를 약속하는 인사였다면 오늘의 인사는 이별을 전제로 하는 인사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 나태주>



나는 분명 지금 행복한데

왜 이리 서러운 걸까...

왜 이리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걸까...

기어코 소리 내어

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음날 엄마한테 얘기하면

분명 그러시겠지

"그건 행복에 겨워서

너무 행복에 겨워서

흐르는 눈물들이라고"


그래.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한 것이다

전화기 넘어

잠드는 엄마의 목소리를

이렇게 들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소리 내어

울고 난 다음날에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나는 분명 굉장히 행복에

겨운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작고 큰

행복들 속에서

그 순간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가야 함을.


그렇게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나도

더 행복해지고

그러면 엄마도

더 행복해지시지 않을까?


다음번엔 울지 말고

잠드는 엄마한테

꼭 말해줘야지

"엄마, 오늘도 잘 자~

항상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