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도 신호가 있었으면

by 이제은

지난주 쉬는 날 장을 보기 위해 집 근처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의 마트에 가는 길에는 왕복 8차선을 가로지르는 긴 횡단보도가 있다. 횡단보도가 긴 만큼 보행자 파란불 또한 30초 이상 길다. 아마도 빨리 걷지 못하는 노인들과 유아 혹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코너를 돌아 이 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신호가 길으니 굳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쪽에서도 나와 함께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른쪽 자전거 도로에서 어떤 여자가 전동 킥보드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동그란 검은 헬멧을 쓰고 있는 그녀는 꽤 빠른 속도로 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전동 킥보드가 생각보다 빠르네? 가까운 출퇴근 거리는 타고 다닐 수 있겠구나?' 요즘 들어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듯했다. 나름 운동도 되고 바람도 쐬고 괜찮은 옵션이겠구나 싶었다. 이참에 나도 전동 킥보드나 타볼까 생각하는 찰나,


쌔앵~


순간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보이며 아까 오른쪽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오는 여자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그녀의 검은 중단발과 남색 가방, 검은 전동 킥보드, 그리고 정면만 바라보던 무표정한 표정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뒤늦게 뒷걸음치었다. 그녀의 킥보드는 이미 꽤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내게 등만 보인채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신호등이 빨갛게 껌벅이이며 숫자 10이 나타난 것을 보고 재빨리 횡단보도를 마저 건넜다. 나는 몇 초 동안 제자리에 서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씁쓸한 마음으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 동생 J에게 그 전동 킥보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동생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아연실색했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지라도 교통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냐며. 어떻게 보행자가들이 있는데도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앞만 보고 운전할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전동 킥보드 여자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교통규칙을 따르지 않고 이동수단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가끔 도보로 전동 킥보드,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들이 다니는 것을 보았다. 보행자들이 알아서 피하고 조심하는 것도 보았다. 안타까웠다. 도보에서도 걱정하면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 또한 걸을 때 방어운전이 아니라 방어 보행을 한다. 내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하므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 그냥 도보를 걸을 때도 양옆과 앞뒤를 살피며 걷는다. 자동차,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 외에도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걷는 사람들도 잘 살펴야 한다. 전철역 안도 예외는 아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상 주위를 살펴야만 한다.



오늘 아침도 장을 보기 위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똑같은 전동 킥보드 여자가 저 앞에서 횡단보도를 쌔앵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만 있다면 분명 찍었을 텐데 그녀와 그녀의 전동 킥보드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내가 장을 보러 나오는 시간과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이 같은 듯했다. 변함없이 자전거 도로에서 빨간불이건 파란불이건 앞만 보고 달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또한 그녀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걷고 운전하는 사람들의 안전도 함께 걱정되었다.


전동 킥보드를 타든 무엇을 타든 중요한 것은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안전만큼 상대방의 안전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킥보드 여자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쓰지 않았는가. 자신의 머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안전도 소중하다는 사실 또한 깨닫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약자와 어린이들, 임산부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동네, 안전한 사회를 꿈꿔본다. 내 안전과 상대방의 안전은 결코 다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고 행동한다면 분명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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