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0

오늘의 책: 류시화 님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by 이제은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하지

뭔가 마음에 안정감을 주거든

떨리는 불안감을 곤히 잠재워주는

신비한 힘을 지녔지

설령 그 숫자가 50:50,

반반이라고 할지라도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지.



그렇다면 80:20은 어떨까?

조금 더 안정감이 느껴질까?

나는 왠지 욕심이 생기기 시작해.

이왕이면 90:10이면 참 좋을 텐데

라고 말이지.

그런데 작은 실수가 있었다네.

실은 20:80이라네...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마음은

오르락내리락

울끈불끈 힘이 차올랐다가

추우우욱 힘이 빠져나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50:50,

반반이었을 때가 좋았는데...



이상하지.

변한 것은 숫자뿐인데.

50:50에서 80:20,

80:20에서 90:10,

그리고 90:10에서 20:80.


아니, 실은

50:50에서 20:80이 된 것뿐인데.

설마,

내가 마음속으로

욕심을 내서 숫자가 변한 걸까?



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간절히 되뇌기 시작해.

'이제 절대 욕심 내지 않을 테니

숫자야, 다시 반반으로 변해다오.'

긴 침묵 후에

근엄한 숫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글쎄. 이런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그러게.

이런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나는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내게 이미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욕심을 내지.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잃은 뒤에야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닫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바라보아.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가족으로,

당신의 친구로

태어나 또 만날 수 있기를.



이상하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 올라.

짙은 그리움으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당신과 함께 한 추억들로.



그래.

설령 우리가 다시 만날 확률이

1:99 일지라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

혹시 또 모르지.

마음 착한 숫자가 실수로

1:99를 99:1로 변하게 해 줄지도.



그러니

오늘부터는 절대 욕심내지 말고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야겠다

굳게 다짐해본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계획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 어느 소설가가 썼듯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나빠지고, 더 좋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좋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 -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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