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오늘의 책: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by 이제은


‘좋은 글쓰기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본질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이라면 이런 열망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글을 쓴다. 우리는 말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 <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 중에서


나는 어두운 공간이 편하다. 완벽한 어두움이 아닌 빛이 존재하는 어둠. 커튼을 친 상태에서 불을 켜지 않아도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물건들의 형체를 밝히는 그런 어둠 속이 편하다. 고요함도 좋지만 좋아하는 피아노 곡을 적당히 크게 틀어놓고 글을 쓰는 것이 편하다. 특히 파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강약의 흐름이 존재하는 잔잔한 곡이 집중하기 편하다.


이 환경 속에서 생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다. 새로운 것이 탄생할 듯 말 듯하다. 어느 순간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몰두한다.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더 이상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글 속에 존재한다. 오로지 글로써 표현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나를 제대로, 더 정확히 표현하고자 두 눈을 부릅뜬다.


어둠 속은 내가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다. 아무도 없는 안전한 곳이다. 자유로운 곳이다. 하지만 무한한 자유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딸려온다. 게으름이라던지 느긋함 같은 것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뭔가 정해진 시간을 선호한다. 나에게 한정된 시간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나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결코 글을 쓰는데 나태해지지 않도록, 오로지 글을 쓰는 것에, 나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들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또한 희미하게, 흐릿하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단어와 문장들로 그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신비롭게도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힘이 있다. 나는 그저 그 이야기들을 나만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경험한 진실은 오로지 당신의 고유한 목소리만이 담아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포장된다면, 우리 독자들은 의심스러워할 것이다. 마치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당신은 결코 다른 사람이 지닌 거대하고 어두운 장소에 대해서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다. 당신은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 - <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 중에서


하지만 이야기도 발걸음을 멈출 때가 있다. 나도 멈추어야 한다.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진실을 담을 수 없다. 그리고 앤 라모트도 말했듯 독자들은 언제나 정확히 진실을 알아낸다. 우리는 우리의 것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들이 직접적으로 혹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 속에서 떠오르는 혹 발견하는 물음들은 우리의 것이다. 그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으며 맞닥 드리는 또 다른 새로운 물음들은 자칫 1차원적이었던 생각을 2차원적, 3차원적으로 하게끔 생각의 관점을 확장시킨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되며 우리 안의 창조성이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그 빛나는 창조성은 우리가 깨달은 진실을 오로지 우리만의 고유한 목소리로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당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믿는 윤리적인 관념이 있다면 바로 그런 관념을 나타내는 언어로 글을 쓰면 된다. 이러한 관념은 아마도 우리가 선험적으로 아는 것이거나 아무도 일부러 꾸며 낼 수 없는 것이어서, 모든 문화와 시대를 관통해 진실로 받아들여진 관념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일이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 <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 중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오직 글쓰기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결국 진실을 향하며 글은 수많은 예술들 중 하나의 표현이자 동시에 근원인 셈이다. 우리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진실은 관념, 즉 진리를 관찰하고 고찰함에서 얻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는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된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모두 누군가의 끝없는 인내심과 끈기 속에서 탄생했으며 그 누군가의 고독의 시간이 존재했으므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겪는 이 고독의 시간이 한결 덜 외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한때 위대한 예술가들도 걸었던 길을 내가 걷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흥분과 자부심이 든다.




나는 다시 내가 있던 현실의 어두운 공간으로 돌아온다. 완벽한 어두움이 아닌 빛이 존재하는 어둠. 어둠 속은 내가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다. 아무도 없는 안전한 곳이다. 자유로운 곳이다. 오늘도 나는 이 편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어둠 속에서 나를 마주한다. 내가 걷는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내가 나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실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그러니 조바심을 내지 말고 오늘도 인내심과 끈기를 잃지 말고 이어나가야 한다. 꾸준히.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들도 좋은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로 진실을 노래하는 삶을 사는 길이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 출처: Image by Jackson David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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