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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28. 2021

기부는 이기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자 졸업생 단체에서 이메일이 왔다

“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어이없음+분노가 폭발했다.

‘아니, 그동안 내가 낸 학비랑 등등의 돈을 받고도 모자라다는 거야? 내 학자금 대출 갚기도 벅찬데!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기부를 해달라는 거야?!!!’

내가 내 학교를 딱히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부 부탁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내 마음속에서 분노가 터진다.


한 번은 친구들과 농담 삼아 “차라리 나에게 그 기부금을 주지, 절대 학교엔 기부 안 해”

아마 지금도 그렇지만 비싼 학비와 여러 가지 비용을 따박따박 받아간? 학교에 대해 나는 확실히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게 학교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내 분노를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표출할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나 스스로가 판단한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기부라는 문화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딱히 어떤 경험이나 피해를 본 것은 없다. 하지만 왠지, 왠. 지. 모. 르. 게 나는 기부가 나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내가 학자금이 많아서, 혹은 어쩌면 내 안에 절고 절어 광천 새우젓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절어버린 피해의식의 열매(?) 일수도 있겠다. 현재 내가 나 스스로 부유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과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게서 학비를 가져간 학교의 잘못이다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나 스스로를 어느 정도 시회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동화 부자’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나도 어이없는 부분이 나왔다. 

‘잠깐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부가 필수라고?’ 설마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내용은 똑같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부를 해야 한다는. 순간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뒤집어 책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 책 이름은 ‘자동화 부자’, 즉 부자가 들어있는 게 맞았다. 얼떨떨한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책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기부를 함으로써 물질적인 소비에서 얻는 순간적인 만족감과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는 공허함이 아닌 지속력 있는 가치로움과 채움 (fullfilment),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평생 단 100원도 기부를 해보지 않은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너무 진부한 말뿐인 말 같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 피 같은(?) 돈을 남한테 줘서 (기부해서) 내가 후회와 이불 킥 외에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궁금했다. 만약 내가 기부를 해서 조금이라도 부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면 한번 기부해보는 것도 어떨까? 최악의 결과는 내 손을 떠난 내 돈(기부금)에 대한 막심한 후회와 이불 킥, 그리고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그 기부금을 적금해 어떻게(?) 복리의 효과로 20년 후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만들 기회를 놓쳤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후회일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마음이 오히려 조금은 편안해졌다. 왜냐면 일어나지도 않은 말도 안 되는 일에 대해 속상해하는 게 너무나도 바보 같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엄마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엄마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몇 년 전부터 십일조 기부를 실천하고 오셨다. 전화로 엄마가 얼마 얼마를 어디 어디에 기부했다~라고 말씀하 실 때마다 내 입 밖으로 ‘그럴 돈 있으면 나한테나 주지!’라는 말이 몇 번이나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차를 사고 싶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그 돈을 모아서 본인 차를 사지 왜 쓸데없이 기부에 돈을 다 날려버리는지 솔직히 이해도 안 가고 또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한 번은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한테 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 도대체 왜 기부를 하는 거야? 그 돈으로 엄마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면 되잖아~왜 엄마는 아끼면서 살면서 매번 그렇게 기부를 하는 거야?” 다들 그렇겠지만 엄마한테 말하면서 괜히 내 말투는 더 철없어지고 어떻게 보면 네 가지(?)가 없어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냥 웃으시면서 “그 돈으로 엄마가 얻은 게 얼마나 많은데~ 우리 가족이 다 잘되는 이유가 따로 있니? 우리가 받는 은총을 생각하면 더 기부해야지. 너희도 십일조 할 돈은 꼭 떼어놓고 써야 돼. 그래야 다 너희한테 되돌아온단다.” 


그 당시에는 그냥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엄마의 이 말씀이 지금 이 순간 탁 하고 머리를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책의 저자가 한 말과 일치하는 말이었다. 기부를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 기부금의 액수를 떠나 내가 나 스스로에게 내 마음에 지속력 있는 가치로움과 채움, 성취감을 선물하는 개념이랄까? 내가 똑같은 돈을 물질적인 소비를 써서 느낄 수 있는 찰나의 만족감과 뒤따라오는 공허함과 비교했을 때 이 선물이 이론상으로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는 마음먹었다. ‘그래, 한번, 아주 딱 한 번만 기부해보자. 혹시 죽기라도 하겠어?’

나는 책의 작가가 추천한 데로 내가 기부할 금액의 75%를 단체의 목적에 쓰이는 단체를 찾아 매월 기부를 신청했다. 지금은 실험단계라 아주 적은 돈을 기부금으로 정했다. 이렇게 1년간 실험을 해본 뒤 과연 내가 1년 전보다 더 부자가 되었는지, 왜 엄마는 기부를 했는지, 또 왜 그 작가는 부자가 되려면 기부를 하라고 했는지 그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갖기를 바란다.

일단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며,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기부를 시작해보려 한다.  

추천곡: Blinding lights by The Week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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