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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28. 2021

아버지와 선물상자

스승의 날을 맞아 S가 자신의 예전 학생들로부터 받은 감사 문자들에 대해 나와 J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잊지 않고 자신들의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 그 아이들이 굉장히 어른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스승의 날마다 여러 선물들을 받아 집으로 가져오시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끔 선물들 (아마도 스승의 날 선물)을 집에 가지고 오셨다. 나는 어떤 아주 관대한 산타클로스가 아버지에게만 몰래 선물들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그 선물들은 매번 순식간에 안방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 나는 도대체 그 많은 선물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궁금해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안방에 몰래 들어갔다. 침대 밑에도 없고 엄마의 서랍 장안에도 없고 화장실 서랍 장안에도 없었다.


‘이 선물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나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이곳저곳 들춰보고 살펴보며 안방 구석구석을 탐정처럼 일사불란하게 조사했다.

‘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 선물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저기!’

난 마치 명탐정 코난처럼 혼자 안방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아주 키가 큰 장롱이 큰 바위 인양 묵직하게 서있었다. 아래서 올려다보니 흡사 덩치 큰 거인 같기도 하고  먼 곳에 살고 있다는 아프리카 코끼리 같아 보였다. 그 장롱의 손잡이는 내 머리보다 한 뼘 높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 손잡이에는 긴 줄들이 달린 분홍색과 노란색의 복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그 주머니를 조심스레 손잡이에서 떼어내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은 후 문을 열었다. 높은 옷걸이들에 기다랗게 걸린 아버지의 양복들과 어머니의 코트들 때문에 장롱 안은 매우 어둡고 깊어 보였다. 마치 바다 깊숙이 사는 거대한 고래의 입안처럼 신비로운 동시 조금 위험하게 느껴졌다. 장롱 바닥에는 잘 개어진 옷들과 물건들이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찾던 그 선물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선물들은 저곳에 있다!’


나는 부엌에 가서 내 몸만큼 큰 의자를 바닥을 질질 끌으며 장롱 앞에 가져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의자 위에 올라가 우뚝 섰다. 그러자 내 눈 앞에 장롱 안 옷걸이들 위 작은 공간이 보였는데 그곳에는 마치 어두운 하늘에 숨어있는 작은 별빛들처럼 선물들이 어둠 속에 몸을 제각각 숨기고 있었다. 나는 짧은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집어 장롱 밖으로 꺼내었다. 그것은 세로로 길이가 긴 가벼운 얇은 상자였다.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다시 한번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그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손에 닿는 감촉이 매우 부드럽고 깊은 바닷빛 파란색이 멋져 보이는 넥타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넥타이를 출근하실 때마다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이것이 넥타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왠지 나만의 비밀 보물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어 혼자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그리고는 이 넥타이를 어떻게 할까 혼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안방 달력에 표시된 아버지의 생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넥타이를 아버지 선물로 드리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아버지는 매번 선물들을 받아오셔서 이 어두운 장롱 위에 넣어두기만 하는데 이 넥타이가 여기 있다는 사실도 아마 모르실 테야.’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엉뚱한 생각을 그때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하고는 그 넥타이가 든 상자를 내 방 서랍 장안에 가져가 숨겼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아버지 생신에 짠~하고 이 바닷빛이 일품인 멋진 넥타이를 온 가족 앞에서 아버지에게 드리면 굉장히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나를 대단하게 바라보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생각이 들자 난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며 우쭐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과연 아버지께 성공적으로 아버지가 선물로 받은 넥타이를 제대로 선물했을까? 안타깝게도 사실 그 이후의 일은 정말 이상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랍 안에 넣어놓고 나서 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고는 까먹었을 수 도 있고, 아버지 생신에 아버지께 진짜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몰래 넥타이를 내 마음대로 꺼낸 행동이 들켜서 혼이 날까 봐 서랍 안에 넣고 바로 다음날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 줄 선물은 내가 직접 마련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었는지. 어쩌면 얍삽하게 이미 선물 받은 아버지의 선물을 도로 아버지에게 선물해서 그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버지의 모습만 생각하며 신이나 혼자 입까지 가리며 킥킥 웃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생각하니 그 마음이 참 단순하고 순수하게 느껴져서 왠지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곤 나는 생각했다. 나의 5살 때의 드문드문 한 기억 속에 있는 그 바닷빛의 파란 넥타이의 행방은 아마도 부모님밖에 모르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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