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세상

by 이제은


지금껏 안락한 삶 속에서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른 체

눈앞의 풀잎만 보며 살아왔지

오늘 먹을 풀잎, 내일 먹을 풀잎

그거면 충분하지, 아무 걱정 없지

안주할 생각만 하며 살아왔지


그러던 어느 날 괴로움이 시작되었어

세상이 온통 날카로운 바늘이 되었고

숨 쉬는 매 순간 찢어지고 갈려지는 고통과

차마 모조리 토해낼 수 없는 거친 울음.

산산조각 힘없이 부서져 흘러내리는 슬픔과

걷잡을 수 없이 붉게 퍼져나가는 분노.

난생처음 마주하게 되었지.


나는 그 순간 깨달았어.

내가 누군지.

나는 작은 애벌레였어.

풀잎만 뜯어먹으며 내 작은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던 작은 애벌레 한 마리.

나는 생각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저 이 고통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너무 괴로워..."


그 순간 나는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질 않았어.

"이렇게 나는 끝나는구나...

이게 진정 나의 끝이로구나."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무(無)의 세계 속에서

그저 깊은숨을 들이마셨어.

그리고 숨을 내뱉으며 팔을 벌렸지.


펄럭.


펄럭.


애벌레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애벌레는 나비가 되었다. - 속담

Just when the caterpillar thought the world was over, it became a butterfly. - proverb



눈을 떠보니 나의 두 팔에는

커다랗고 멋진 두 날개가 달려있었어.

그리고 나는 이미 날고 있었지.

이내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

그 눈물은 빛나는 이슬이 되어 풀잎에 내려앉아

또르르 또르르 살포시 땅을 적셨지.


나는 두 팔을 벌려 힘차게 날아올라

저 높고 푸른 하늘 속으로 나아갈래.

어떤 두려움과 시련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올라

마침내 내 꿈에 닿는 그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누가 뭐래도

내 세상은 이제 시작이니까!

우리는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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