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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자라는 때

하루 명상-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by 이제은


위대함을 지니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인가? 고독이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크고도 참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오게 마련입니다.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시간들이 바로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착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그 고독뿐입니다. 자기 속으로 몰입하여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것, 그런 것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중에서


고독이 자라나는 때는 언제일까?

릴케는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다 말했다.

나는 릴케의 글을 읽고 난 뒤

한 소년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년이 처음 인지했던 고독의 존재는 외로움이었다

모가 난 귀퉁이처럼 겉을 맴돌면서

반항심과 자립심으로 뭉쳐진 스스로의 탑을

그는 하나 둘 쌓아 올렸다.

소년은 그 탑들의 의미는 알지 못한 체

멈추지 않고 혼자 돌들을 쌓고 또 쌓아 올렸다.

가끔 노을이 질 때면 함께 짙어지는 외로움이

그동안 쌓아 올린 탑들을

모두 무의미해 보이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계속 돌을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새 그 외로움은

어둠 속으로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뒤이어 찾아온 고독의 존재는 불안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와

소년의 마음에 의심을 하나둘 심었다

"지금 이대로는 안돼. 이 상태로는 부족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그래야만 해.

그러니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돼."

소년의 마음은 점점 더 단단해져 갔다.

소년은 더 이상 작고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매일 밤 스스로를 담금질을 해가며

어제보다 더 강해진 자신의 모습에 안심했다.


세 번째로 찾아온 고독의 존재는 의문이었다.

소년의 삶은 그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고

반복되는 일상이 그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그동안 하늘 높이 쌓아 올린 수많은 탑들과

매일 밤 강철같이 단단하게 만든 마음도

하루에도 여러 번 불쑥불쑥 튀어나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염없이 늘어지는 의문들을

달래지도, 내쫓지도 못하였다.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매번 고독은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며

언제쯤이면 그 매몰찬 발걸음을 멈추고

소년의 삶이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소년은 고독의 시간을 피할 수만 있다면

진정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것만 같았다.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뒤로한 채.


그때 소년은 깨달았다.

오직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그는 자신과 만날 수 있었음을.

외롭고 불안한 마음,

때론 의심에 젖고 의문들에 둘러 쌓여

마음이 괴롭고 슬플 때조차도

어쩌면 고독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길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삶의 그 어느 순간에서도

몰입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만날 수 있으며

스스로 옥죄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방법,

고독은 소년이 그 방법을 배우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 속의 고독의 존재의 의미를 깨달은 소년은

이제 망설임 없이 고독이 내민 손을 부드럽게 감싸듯 잡았다.

그리곤 이내 자기 속으로 몰입하여

내면의 자신과 마주했다.

진흙이 연못 바닥에 가라앉듯

그의 모든 걱정과 근심들 또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가라앉았다

곧 마음은 차분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니

소년은 세상이 한결 깨끗하고 투명해 보였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탑들을 쓰다듬으며

그동안 단단하게 담금질만 해오던 자신의 마음도

함께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고독의 시간

누군가는 고독을 맞바꾸려 하며

또 누군가는 그것을 함께 나누려 하지만

그 누구도 고독의 시간을 피할 수는 없다

마치 소년이 그러했듯.

그러나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누구나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이 자라나는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다.

내 삶 속의 고독의 존재의 의미를 진정 깨닫고 받아들이는 순간.

어쩌면 모든 고독은

나름의 크고도 내적인 위대함을 지닌 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릴케의 글을 통해

그동안 내 삶에 찾아왔던 고독들을 떠올려보며

전과는 다르게 깊은 평온함을 느꼈다.

그 모든 고독의 시간 속에서 잘 버텨준 나 자신이

고마웠고 미안했으며 대견했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고독의 시간 속에서

탄생하는 모든 창작들이

때로는 바다처럼 깊고 푸르게

또 때로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눈부시게

세상에 퍼져나가 누군가의 고독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고독을 맞이해본다.



고독은 바다와 하늘 사이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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