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명상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예술을 이해하거나 직접 창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에는 시간을 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10년이라는 세월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계산을 하지도, 햇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무처럼 무성하도록 하십시오. 나무는 억지로 수액을 내지 않으며, 봄의 폭풍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혹시나 그 폭풍 뒤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지도 않습니다. 결국 여름은 오게 마련이지만, 근심 걱정 없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서 있는, 끈기 있는 사람들에게만 활기로 찾아옵니다. 저는 그것을, 괴로움을 참아 가며 인내심으로 매일 숙달하고 있으며,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중에서
"봄의 폭풍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글을 읽다 이 문장 앞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전과 다름이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의연하다는 단어는 릴케의 글에 여러 번 등장했다. 릴케는 왜 이 단어를 썼을까? 나는 이 단어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의연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탐구하기 전 문장의 앞부분에 놓인 '봄의 폭풍'이란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봄은 만물이 깨어나고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계절이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의 인생의 계절은 무엇일까? 혹시 봄일 수도 있을까?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큰 어려움이 없는 내 일상을 나는 나름 적당히 만족하며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지내고 난 뒤 편한 마음으로 잠에 드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나는 이런 단조로운 일상을 좋아한다. 너무 큰 걱정도, 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주어진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해내면 되는 일상 말이다.
그렇다면 '봄의 폭풍'이란 어떤 뜻일까? 어떻게 봄처럼 따뜻하고 좋은 계절에 폭풍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폭풍이라고 해서 꼭 나쁜 뜻은 아닐 수도 있다. 큰 변화와 성장을 위한 시련도 폭풍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폭풍은 내적, 외적, 혹은 그 둘 다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해석한 봄의 폭풍은 이러한 것이다. 안정된 혹은 안정되어 보이는 삶 속에서 안주하려는 성향과 반대되어 나타나는 변화를 꿈꾸는 성향 혹은 시도.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지금 내 삶을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이 순탄하고 안정적인 봄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생각했다.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가 들었다. 한편으로는 혹 그렇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나 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들었다. 이 모든 감정들이 어우러져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 둘 모인 바람들이 폭풍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봄의 폭풍은 내 삶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변화 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찾아온다면 분명 많이 힘들고 괴로울지도 모른다. 특히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불쑥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으며 때론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만큼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나는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과 조절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그 나머지는 놓아주어야 한다. 폭풍은 이미 내게 찾아왔으며 더 이상 누군가를 탓하거나 후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폭풍은 이미 내게 찾아왔지만 나는 전과 다름없이 나를 믿고 버티고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릴케가 말하고자 했던 의연하다는 말의 참뜻이 아닐까?
"결국 여름은 오게 마련이지만, 근심 걱정 없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서 있는, 끈기 있는 사람들에게만 활기로 찾아옵니다."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앞으로 찾아올 나의 여름을. 가끔 1년 후, 3년 후, 5 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가 바라는 1 년 후의 내 모습, 3년 후의 내 모습, 그리고 5년 후의 내 모습은 다들 제각각이지만 식물의 줄기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내 모습과도 함께.
문득 나는 릴케의 조언대로 나무처럼 무성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잠자는 동안 나무가 되어서 무성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나무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성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인내심과 끈기를 기르는 것이네. 하루아침에 무성해지길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욕심이 아니겠는가?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더 빠르고 큰 대가를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이니 말일세.”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릴케의 말처럼 봄의 폭풍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있는 것이다. 전과 다름이 없이 나 스스로를 믿어주며 근심 걱정 없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끈기를 갖고 말이다. 그래서 활기로 가득 찬 여름이 찾아올 때 기쁘게 맞아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