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Mar 13. 2023

밤송이 안의 호기심

부슬비가 내리는 목요일 아침, 동생과 함께 장을 보러 근처 마트에 갔다 계산코너에서 깐 밤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린 시절 밤송이를 까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할머니댁에 갔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밤을 주우러 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밤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지 못했었다. 그저 다람쥐들이 주로 먹는 것이니 산에 있겠다 싶었다. 천천히 산을 올라가고 있는데 주위에 가시가 잔뜩 박힌 야구공 크기의 둥근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은 뭘까?’ 생각하며 걷다가 도착한 곳엔 그 둥근 것들이 아주 많이 바닥에 있었다. ”밤들은 어디에 있어요? “ 내가 묻자 아빠는 그 둥근 것들이 바로 밤송이들이라고 일러주셨다.



어린 내 눈에 밤송이를 둘러싼 가시들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찔리기라도 하면 피가 철철 날 것 같았다: 못된 도깨비들의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주저하며 밤송이들에게서 멀리 감치 서있던 내게 아빠는 무서워할 필요 없다며 밤송이를 까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아빠의 능숙한 발동작에 얼마 안 있어 무척이나 견고해 보이던 가시 주머니는 마법처럼 열렸고 동시에 내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조심스럽게 밤 알맹이들을 꺼내어 내 손에 올려주셨다. 자신을 둘러싼 뾰족한 가시들과 닮은 것이라곤 삐죽한 머리뿐인 밤 알맹이는 매우 둥그렇고 매끄러웠으며 작았다. 나는 그런 밤 알맹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가시 주머니 안에 이렇게 다르게 생긴 밤 알맹이가 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빠의 시범을 보고 난 뒤 나는 용기를 얻어 밤송이 까기에 도전해 보았다. 하얀 운동화로 뾰족한 가시들이 촘촘히 박힌 밤송이를 조심스럽게 까보았다. 혹시라도 운동화 안으로 가시가 들어와 내 발가락을 찌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처음에는 살살 까보다가 점차 발에 힘을 주니 아주 천천히 밤 알맹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밤송이를 깠다. 노력에 따라 바로 주워지는 보상의 맛은 아주 달콤했다. 분명 밤 알맹이들보다 더 달콤하고 중독적이었을 것이다.



정신없이 밤송이를 까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나는 흘깃흘깃 깊은 산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늘진 산속은 약간 침침하고 서늘해 보였다. 혼자라면 무서웠겠지만 그날은 가족들과 함께 있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좀 쓸쓸해 보였다. ‘우리가 산에서 내려가면 아무도 없을 텐데 산은 심심하지 않으려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도 나무들도 다람쥐들도 자신들만의 고요한 평화가 있었을 텐데 오히려 그 평화를 밤송이를 주우러 간 내가 방해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어렸던 나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열심히 밤송이를 깠었다. ‘이 밤송이 안엔 어떻게 생긴 밤 알맹이들이 들어있을까?’ ‘내가 과연 이 밤 알맹이들을 발을 찔리지 않고 잘 꺼낼 수 있을까?’ ‘다람쥐들은 어떻게 이 밤송이를 깔까?’  ‘다람쥐들은 다치지는 않을까?’ ‘근데 이 밤 알맹이들은 무슨 맛일까?’ ‘먹어도 괜찮으려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내가 흥미가 느끼는 것들에는 질문들이 참 많다. (최근에 지인이 나보고 만화 캐릭터 호기심 많은 원숭이 죠지(George) 같다고 했는데 아마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떨 때는 그냥 질문을 하는 거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이어지는 게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그 기쁨과 즐거움이 밤하늘 별들처럼 반짝거려서.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전보다 질문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호기심을 갖고 무언가 시도해 보는 것보다 이미 아는 것을 하는 것이 몸도 머리도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 괜한 질문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인간관계 문제들도 피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때론 말을 아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 도 있으며 내가 하는 질문들의 답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어릴 적 내 세상을 가득 채운 호기심은 이젠 대부분의 시간을 밤송이 같은 주머니 안에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이라는 가시들에 둘러싸인 아주 견고한 주머니 안에서 말이다.



어느 오후 가족과 함께 약간 어둡고 서늘했던 산속에서 밤송이를 까던 추억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뭘까. 일요일 오후가 무료 해져서였을까? 어린 시절이 그리워져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밤이 먹고 싶어서였을까? 아이코. 또다시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달달한 바밤바 하나 먹으면 딱 좋을 듯싶다.

그리고 아직 춥지만 제법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곳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갔다 와야겠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어야겠다. 그러면 또 혹시 모르지.

밤송이 까기 같은 재밌는 것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도깨비들의 장난감 같이 생긴 밤송이들. (출처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