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을 때

헤르만 헤세와 파블로 네루다

by 이제은

한 점 구름

헤르만 헤세

파란 하늘에, 가늘고 하얀

보드랍고 가벼운

구름이 흐른다.

눈을 드리우고 느껴 보아라,

하얗게 서늘한 저 구름이

너의 푸른 꿈속을 지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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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나에겐 하늘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생긴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변화하는 하늘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구름들은 내게 작은 기쁨과 기대감을 선물한다. 매일 비슷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은 선물보따리들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울 때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마법처럼 마음이 한결 부드럽게 펴진다. 넓어진다. 하얀 양들의 보드랍고 가벼운 털처럼 내 마음을 간지럽힌다.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진다.


그래서 그런지 헤르만 헤세의 시가 마음에 와닿았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있자니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가 내게로 왔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가 내게로 왔다

파블로 네루다(정현종 역)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詩)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어. 내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 매번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휩싸인다. 시대를 초월하는 시(詩)의 아름다움과 깊이에. 마치 시가 그에게로 왔을 때 그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쓴 것처럼 시를 포함한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감동의 물결이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이 감동의 물결은 내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던 딱딱한 무언가를 모두 씻어내려간다. 사소한 걱정들부터 시작하여 불만, 불평, 욕심, 미움 그리고 불안까지도. 그리고 내가 다시 제대로 호흡할 수 있도록 내게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용기와 희망도 함께.


언젠가 나도 위대한 헤르만 헤세나 파블로 네루다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선물해 주고 그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아주 큰 욕심이지만). 그때까지 매일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마음에 품고 기쁘게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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