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Aug 30. 2023

사랑하는 할머니

편지

사랑하는 할머니,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하루하루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참 맑습니다. 고등학교 때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왜 그토록 작은 일들이 그리도 크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와 같이 먹던 소박하지만 참 맛있었던 집밥들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수육과 도가니탕, 된장찌개와 두부 두루치기, 그리고 당근과 사과가 들어간 샌드위치까지도요. 할머니가 정성스레 세 번 씻으신 뒤 지어주신 따뜻한 밥도 참 그립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고 사랑도 해보면서 저는 분명 그때보다 더 성숙해졌어야 하는데 아직도 저는 마음이 너무 여린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동생과 싸우고 나면 속상한 마음 기댈 곳이 없어 할머니 옆에서 울며 잠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제가 힘들고 속상할 때마다 할머니는 항상 제가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셨습니다. 말없이 그저 당신의 따뜻한 손바닥으로 제 작은 등을 쓸어주시며 제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함께 해주셨지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은 오늘 이 화창한 여름날처럼 마음이 다시 맑아지곤 했습니다. 지금은 집 근처 공원에 와서 혼자 산책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햇빛과 바람과 새소리가 할머니의 손처럼 제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또 마음의 평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리 열심히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글을 써보지만 저는 그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직 미숙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사랑도 마음의 평화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을 가득 주며 움켜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새 전보다 더 자주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의탁하고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성당에 다녀온 뒤 공원에 와서 책을 읽으며 할머니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할머니와 함께 웃으며 옛날 얘기도 하고 함께 예쁜 숲을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마음에 사랑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지내도 할머니는 언제나 제 마음 안에서 저의 연약하고 작은 등을 쓸어주시며 저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가슴 깊이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랑과 평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저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함께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 시간이 저는 너무도 감사하고 기쁩니다. 할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매일 밥 잘 챙겨 먹고 기쁘고 감사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할머니도 항상 잘 챙겨드시고 매일 기쁘고 감사하게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먼 타국에서 사랑하는 손녀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한점 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