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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Nov 19. 2023

해질녘 세상

당신에게 선물하고픈 시

해질녘 세상

                                                안젤라


해질녘의 세상의 모습처럼

모든 것의 윤곽이 희미해진다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고

그어놓았던 두꺼운 경계선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칠판에 남겨진 누군가의

오래된 낙서의 흔적처럼

읽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경계가 무너질 때

잠들었던 네 기억들이 떠오른다.

미처 닦아주지 못했던 너의 눈물과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했던 너의 손.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앞에서

서로의 그림자만 바라보며

해야 했어야 하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듣고 싶었던 말만 하염없이 기다렸던 그때.


해질녘 세상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사랑과 미움이 뒤섞이고 오해와 후회가 반복되며

너와 나 사이의 경계선이 힘없이 무너졌을 때.

이제는 오래된 낙서의 흔적처럼

희미해져 버린 기억과 상처들을

나는 제대로 읽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었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어 네게 얘기해 주고 싶다.


별 존재감 없이 흐릿한 선처럼 살아왔던 나를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인생을 올곧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내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인생의 안내선은 나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와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건강한 거리이다.

내가 나를 돌보고 남도 돌볼 수 있는 지혜이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물어볼 수 있는 용기이다.


앞으로 만약 내가 누군가를 진정 위한다면

먼저 건강하고 튼튼한 안내선을 세우고 싶다.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함께 이겨내고

그 어떤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서로를 알아봐 주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돌보아주고 싶다.

그래서 해질녘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 속을

함께 손잡고 걸어가고 싶다.



Photo from Unsplash



https://youtu.be/YguvZnzjrsU?si=LXf4IZhatiPBK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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