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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Apr 08. 2024

On Top of the World, 시선

행복과 불안에 대하여

쉬는 날 아침에는 빨래를 합니다. 빨래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었는데 이번주는 비가 자주 와서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점점 산처럼 쌓여 올려지는 옷들을 바라보며 저는 다소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고 마지막 양말 한 켤레까지 넣고 세탁기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습니다. 세탁기에게는 미안하기는 했지만 한 번에 빨래를 끝내고 싶어 조금 욕심을 부렸습니다.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작동시킨 뒤 타이머도 맞추었습니다. 철컥하고 세탁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빨래가 될 동안 쉬는 날 여유롭게 좋아하는 샥슈카 (혹은 에그인헬)을 만들어 먹게 발걸음을 옮기면 되었지만 걱정이 되어 세탁기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쉬이이익, 물이 나오는 소리가 나고 세탁기가 오른쪽으로 두어 번 회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꽉 채운 옷가지들은 거의 미동이 없어 보이고 전혀 젖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세탁실에서 나는 혼자 불안에 사로잡혀 그만 세탁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투명한 유리너머의 옷가지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괜한 욕심을 부린 제 자신이 조금 원망스럽고 밉게 느껴졌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때마침 쪼그리고 앉아있던 다리도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난데없이 서러워지며 쉬는 날 아침 제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세탁기의 회전이 멈추고 물이 더 나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좀 더 빠른 속도로 세탁기가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옷가지들도 젖고 그 부피가 줄어들어 힘찬 세탁기의 회전에 맞추어 섞이고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크게 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스트레칭해 주었습니다. 다시 피가 통하자 매우 기뻐하는 다리의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저도 바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고 저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먹어본 뒤 맛있어서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게 된 샥슈카는 참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언제나 먹어도 먹을 때마다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샥슈카를 만들려면 일단 팬을 달군 뒤 한쪽에는 올리브 오일을 두른 뒤 좋아하는 야채들을 볶아줍니다. 저는 주로 피망과 호박, 그리고 양배추를 씁니다. 그리고 팬의 다른 한쪽에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올려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fire roasted 토마토 페이스트가 풍미가 좋아 씁니다. 야채가 어느 정도 익고 토마토 페이스트의 수분도 살짝 날아간 듯 보이면 팬의 중간에 버터를 한 조각 올리고 계란을 넣어줍니다. 간단히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뚜껑을 덮은 뒤 계란이 익기를 조금 기다려주면 어느새 맛있는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웁니다.


먹기 직전 취향대로 파마잔 치즈나 좋아하는 치즈를 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잘 익은 아보카도가 있을 때면 그냥 썰어서 함께 먹거나 혹은 으깬 뒤 소금과 라임, 그리고 실란트로만 넣어 간단한 구아카몰리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드는 샥슈카는 먹을 때마다 마치 멋진 곳으로 휴가를 와서 즐기는 아침 식사 같아 제게 굉장히 큰 행복을 선물해 줍니다. 직접 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행복과 감사는 하늘과 구름, 봄과 꽃처럼 함께 하면 더욱 좋은 한쌍이지요.


요리를 마치자 때마침 타이머가 울렸습니다. 스토브의 불을 끄고 세탁실에 내려가 세탁기 문을 열자 촉촉이 젖은 옷가지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아, 그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샥슈카를 맛있게 먹은 것처럼 행복과 감사함으로 차올랐습니다. 옷가지들을 드라이기에 옮겨 넣으며 아까 요리를 하며 들었던 나오미와 고로의 <top of the world>를 흥얼거렸습니다.


https://youtu.be/UxDalL884Lg?si=BVaKHxAzfdtgCmxD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이라는 뜻의 이 곡은 원래 카펜터스라는 미국 듀오 남매가 부른 곳이지요. 이 익숙한 곡을 나오미의 이슬처럼 투명한 목소리와 이토 고로의 봄처럼 따뜻한 기타 연주로 들으니 제 마음에도 봄날 햇살이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꽃향기를 실은 봄바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세탁기에는 그저 빨래거리들만 꾹꾹 넣었던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제 마음 안에 소리 없이 쌓이고 있던 모든 걱정과 근심들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넣어보고 나니 세탁기 안을 가득 채울 만큼 한가들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넣고 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불안해서 세탁기 앞을, 내 삶의 문제들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 그동안 내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불안에 일상의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놓치고, 놓친 뒤 후회하며 살아왔지요.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눈앞의 행복을 불안 때문에 놓치고 살고 싶냐고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요.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노래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down on creation. And the only explanation I can find Is the love that I've found, ever since you've been around.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

난 세상의 꼭대기에서 창조물들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내 곁에 있었기에 내가 찾은 사랑이에요. 당신의 사랑만이 내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을 주었어요.


바로 사랑이지요. 내가 내 삶에서 느끼는 행복.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그 깊고 충만한 느낌이 바로 내 안의 모든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과연 내 삶 속에 내가 살아하는 것들을 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물론 매일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특히 내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과 근심으로 차올라 세탁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저처럼 그 앞에 앉아있다면, 우리 이제 일어나보아요. 어떤가요? 다리를 피니까 일단 살 것 같지 않나요? 다리에 피가 통하며 힘이 생기지 않나요? 그것 또한 내가 내 몸에게 주는 행복이지요. 그리고 몸이 기쁘면 마음도 함께 기뻐집니다.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이제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들어보세요. 모든 걱정과 근심이 깨끗이 빨래되어 햇빛에 기분 좋게 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찾아오면 시선이 내 안에서 내 밖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치 “세상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듯이 말이죠.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마음도 보일 것입니다. 그중에는 저처럼 세탁기 안에 빨래들을 넣느라 진땀을 흘리는 사람들도, 또 세탁기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그저 그 사람들의 어깨나 등에 손을 살며시 얹은 뒤 두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면 됩니다. 때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은 눈빛과 미소, 그리고 온기로 전달이 되니까요.


무사히 빨래도 잘 마치고 맛있는 샥슈카도 잘 먹고 나자 저는 어제 찍은 벚꽃과 목련, 그리고 푸른 하늘이 담긴 사진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나오미와 고로의 아름다운 음악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저에게 이 노래와 샥슈카가 주었던 행복만큼 반짝이는 행복을 그들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보송보송한 옷들의 촉감과 향기로운 향에 취해 오늘도 일상 속의 숨을 행복을 놓치지 않고 만끽해 봅니다. 여러분의 하루에도 보송보송하고 향기로운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라봅니다. *^^*




제가 만든 샥슈카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맛있습니다. ^^



동네를 산책하는데 이런 예쁜 친구들을 발견했습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모든 불안은 사라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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