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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Apr 04. 2024

Somethin’ Stupid, 실수들

요즘 며칠 동안 뉴욕엔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쓰고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문득 길가에 떨어진 꽃잎들을 발견하고는 꽃나무들을 올려다봅니다. 봄이 온화한 미소로 피어낸 사랑스러운 꽃들은 말없이 비와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처럼 우산을 쓰거나 따뜻한 모자를 쓰지 못했지만 꽃들은 지나가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며 봄의 시작을 알립니다. 꽃들에게는 우산이 있던 없건 비는 한결같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우산이 없는 날 비는 걱정이 되고 골칫덩이가 됩니다. 엊그제는 깜빡하고 일터에 우산을 놓고 와 아침에 비를 맞으며 출근했습니다. 차가운 빗방울들이 모자 위로 톡톡 떨어진 다음에는 이마와 콧등 위로도 톡톡 떨어졌습니다. 마스크를 써서 뿌예지는 안경 위로도 개구쟁이 빗방울들은 미끄럼틀을 타듯 흘러내렸습니다. 분명 빗방울들은 잘못이 없는데 나는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들어 걸어가고 있던 길가의 물 웅덩이를 세게 밟았습니다.


아, 그 작은 빗방울들이 얼마나 얄미웠으면 그리 세게 밟았는지 한쪽 신발이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덩달아 옆에서 걷고 있던 동생에게도 물이 잔뜩 튀겨 내 입장은 매우 곤란해졌습니다. 절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라며 후회해 보았지만 이미 젖고 이미 튀긴 뒤였지요. 나는 동생에게 몇 번이나 사과한 뒤 다시는 물 웅덩이를 세게 밟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다소 흥분된 상태로 출근한 뒤에는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가끔 비가 오는 날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치과에 찾아와 주시는 환자분들이 고마워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저는 한 환자분의 젖은 옷들을 보며 아침에 있었던 저의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그 순간 제가 느꼈던 그 감정이 떠오르고 제 스스로의 행동이 믿기지 않아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제가 웃자 그 환자분도 함께 웃고 그 옆에 있던 제 어시스턴트도 함께 웃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가 바보 같아 보일까 봐 절대 얘기하지 않았을 법한 해프닝도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니 비 오는 날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훈훈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6개월 전에 읽었던 아잔 브람 스님의 책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실 나는 실수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저지른 바보 같은 일들로 인해 친구들이 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바보스러움이 결과적으로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중에서


그동안 나는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부끄러워 선뜻 누구에게도 잘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막상 누군가 나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일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때면 그 실수가 생각보다 그리 심각하지도 않을뿐더러 누구나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곤 했습니다. 아, 나는 무엇 때문에 내 실수들을 그리도 꽁꽁 감추느라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왔는지요! 또 얼마나 긴장하며 몸과 마음을 괴롭게 했는지요! 아이코, 그러고 보니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지나간 실수들 때문에 또 한 번 내 마음을 괴롭게 할 뻔했습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하하 웃으며 넘어가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침착해야 합니다. 마치 머릿속에 잠시 정지버튼을 누른 뒤 습관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드는 생각과 감정들을 들여다봅니다. "아, 나는 또 바보같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혹은 "이제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나를 비웃을 거야."라는 생각들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순간의 창피함이나 부끄러움, 두려움 같은 감정들도 알아차립니다.


내 안의 내 생각들과 감정들에게서 한걸음 떨어져 그것들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나요? 아이들과 눈을 맞춘 뒤 실수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배울 점은 배워서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차분하게 말해줍니다.


물론 매번 차분하게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대한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이들이 실수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고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에 속상해하거나 또 힘들어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배우고 회복 탄력성을 길러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스스로에게 마치 아이들에게 말하듯 말해주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친절하고 다정한 눈빛과 목소리로 대할 때, 또 따뜻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여주며 미소 지어줄 때 우리의 마음은 부드럽게 열립니다. 마음이 열리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기가 한결 편해집니다. 그 상태에서는 실수에 대한 엄중한 성찰도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마음을 한번 되돌아보고 나면 고생한 마음에게 고맙다 말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음껏 밖에 나가 뛰놀라고 하듯 마음 또한 마음껏 뛰놀며 휴식을 취하라고 말해줍니다.



사진 - Unsplash


오늘 이 글에서 제가 말하고자 한 실수들은 아잔 브람 스님이 말씀하신 "결과적으로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바보스러운"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또 쓰다 보니 더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실수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쓰게 되었네요. 오해들과 마찬가지로 실수들도 그 크기와 깊이, 그리고 심각성도 다 제 각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실수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우리의 지혜와 유연함이 필요하겠지요.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습니다. 때마침 우루 쾅쾅! 하고 천둥번개도 쳤습니다. 저는 성난 비바람에 우산도 저도 둘 다 날아가지 않도록 꼭 붙들고 어느새 길가마다 작은 도랑들을 이룬 빗물을 요리조리 피해 집에 왔습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비바람을 뚫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아침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겉옷이 흠뻑 젖고 신발안으로 들어온 차가운 빗물 때문에 두 발이 시렸음에도 나는 웃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젖은 옷가지들과 신발은 말리면 되고 나는 따뜻한 목욕 후 새 옷들로 갈아입으면 되었으니까요!


비가 올 때는 왠지 신나는 음악을 듣고 싶어 집니다. 즐겁게 저녁준비를 하며 들을 수 있는 곡을 찾다가 평소 굉장히 좋아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새 곡을 발견했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그녀의 딸,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Somethin’ Stupid를 틀어놓고 음식을 준비하다가 중간중간 스텝도 밟아보고 빙글 돌아보기도 하며 춤을 추어보았습니다.


자칫 실수로 하루종일 기분이 가라앉을 뻔했었는데 이렇게 따뜻하고 아늑한 부엌에서 좋은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추며 음식을 준비할 수 있음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사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기쁘게 뛰고 있는 저의 심장처럼 그 뜨거운 감사함은 제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https://youtu.be/LWXUdqvVO8Y?si=yljgMEcAT0B0vUbL


오늘 저녁은 프랭크와 낸시 시나트라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뜨거운 감사함을 느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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