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원>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으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넓어지는 원> 일부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중에서
원이란 무엇일까요? 릴케는 그의 시에서 사람은 넓은 원을 그리며 살아간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더 넓어져 간다고 했지요. 아마도 그 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세상 사이에 깊은 연결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연결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맺는 연결일 수도 있고 또 길을 걷다가 바람에 춤추는 싱그러운 초록잎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 나와 나무가 맺는 연결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내 주변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을 옆에서 함께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는 연결일 수도 있지요.
내가 내 안의 나와 맺는 연결도 아주 작지만 견고한 동시에 유연한 원으로서 내가 나의 원을 세상 속으로 넓힐 때 모든 것의 중심에서 핵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원을 넓혀가며 세상과 스스로를 연결하는 일에 자신의 온 존재를 바치겠다고 쓴 릴케의 간절함이 시대를 초월하여 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가 그토록 바라며 완성하고자 했던 그의 마지막 원은 그가 죽은 뒤에도 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시로서 닿으며 계속해서 넓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원에서 나는 무한한 겸손함과 불굴의 의지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내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속도와 거리에 말이지요. 연결에는 하나가 아닌 둘, 그 이상이 필요하니까요. 나와 내 안의 나와 연결도, 나와 당신과의 연결도, 세상 그 어떤 원과 원과의 연결도 모두 하나의 존재 이상이 필요로 합니다. 만남으로 시작된 연결이 내 삶에 스며들어와 내 안으로, 내 안의 나와 만날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립니다. 얼은 강물이 녹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내는 바로 그 순간, 비가 온 뒤에 하늘에 무지개가 펼쳐지는 바로 그 순간, 그런 순간들처럼 말이지요.
<원>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에드윈 마크햄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중에서
에드윈 마크햄의 시를 릴케의 시와 함께 읽어보면 연결에 대한 더 깊은 사유를 해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복잡한 숙제 같습니다. 때론 내가 삶에서 만나는 누군가가 나를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지요. 상대방은 자신의 삶의 역사, 성향, 환경, 혹은 그저 단순히 그날의 기분이나 호르몬의 변화 등 내가 미처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들로 나를 밀어낼 수 도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일방적으로 밀어냈을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거부감과 불쾌함, 나아가 비난이나 공격으로 인한 상처와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하고 두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억울함과 원망을 느끼게끔 만들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크햄은 이어서 썼습니다. 그 모든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는 (win over) 사랑과 지혜가 우리들 안에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위대한 사랑과 지혜는 더 큰 원을 그려 상대방을 그 안으로 초대하는 일, 즉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감정들 너머의 연결을 느끼는 일이지요. 상대방을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하고 "져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 잘못된 일들은 제대로 바로잡고 나아지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도덕과 예를 지키고 존중해야 합니다. 마크햄의 시를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받아들임은 나라는 사람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안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보다 자유롭게 해주는, 그래서 상대방을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는 일입니다.
나는 적지 않은 날들을 인간관계에서 억울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외로움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왔습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고 그것은 분명 내가 충분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라 믿으며 부족하고 나약한 나 스스로를 탓했었습니다. 아, 얼마나 슬프고 아픈 일인가요? 내가 나를 밀어내는 일은! 마음속에서 밀어내져 갈 곳을 잃었던 '나'는 존재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목소리를 숨기고, 표정을 숨기고, 숨을 쉬는 것마저 숨긴 채 마치 없는 듯이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때론 살아남기 위해서 이렇게 '존재하지 않듯이' 살아갑니다. 적어도 예전의 나는 그 방법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를 그의 집, 그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 바로 내 마음속으로 다시 그를 초대했을 때 비로소 내가 진정 원했던 자유와 평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잘랄루딘 루미의 시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의 옳고 그름에 사로잡혀 살아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잘랄루딘 루미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중에서
우리 머릿속에는 각자 옳고 그름이라는 저울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생애, 환경, 성향, 가치관 등 나의 많은 것들로 만들어진 그 저울에 나는 나 스스로와 상대방을 올려놓고 항상 재보았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누가 더 옳고 그른지 따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매번 마음속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습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저울질과 소용돌이가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었습니다. 루미는 그런 저울질에 몸과 마음과 정신을 빼앗겨버린 나에게 그의 시를 통해 부드럽게 일러줍니다.
옳고 그름의 생각, 즉 내 머릿속의 저울 너머에는 들판, 혹은 어떠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그곳에서 나와 만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저 영혼과 영혼으로 그 풀밭에 누우면 나는 나를 집어삼켰던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걸음 빠져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상대방을, 당신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마음속에 아기 새싹들이 피어납니다. 그들의 해맑은 미소와 웃음소리는 세상을 충만하게 만들어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말도, 생각도, 언어도,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무의미"해집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내 마음에 소용돌이나 그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저 햇살처럼 따뜻한 평온과 고요가 나를 감싸안음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상대방에게로, 주변사람들에게로, 그리고 세상에게로 평온과 고요가 햇살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그 느낌으로 충만히 나를 채워봅니다. 모든 생명을 그 어떤 옳고 그름 없이 그저 무한한 사랑으로 밝혀주는 저 어머니 같은 태양처럼 나와 당신도 똑같은 사랑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과 또 모든 생명들을 밝혀줄 수 있습니다. 감싸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습니다. 손을 잡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야말로 릴케가 그토록 염원하던 마지막 원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사랑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는 일이 바로 내가 나의 원을 넓히고 원과 원들이 만나 더 큰 하나의 원을 만드는 일이겠지요.
21세기 끝없이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시들은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또 내가 어떤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과연 나는 열린 마음으로 나의 원을 넓히며 보다 더 크고 넓은 원 안으로 당신과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초대하여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할까요? 숨 쉬는 매 순간순간이 강물처럼, 새소리처럼, 푸른 하늘처럼 새롭게 빛날 것입니다. 원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얻고 won* 합니다. 그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을 함께 평화로운 풀밭에서 축하하는 하루, 함께 그런 나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꿈꿔봅니다.
*won- win의 과거형으로 이기다, 따다, 쟁취하다, 승리하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네, 저는 저를 기쁘고 웃게 만들어주는 말장난이나 언어유희, 아재개그를 참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