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밤에 잠들기 전에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침대에 조심스럽게 누워 이불을 덮었다. 곧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아늑하고 포근한 아지트로 들어갔다. 알게 모르게 하루 종일 지쳤던 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한순간 탁 풀렸다. 이어지는 기분 좋은 나른함에 흠뻑 취했다. 하지만 그 나른함도 잠시, 어느새 나를 둘러싼 방안의 어두움이 순간 엄습해왔다. 나는 커튼 틈으로 슬그머니 새어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달빛을 놓칠세라 그 얇고 희미한 빛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내 의식이 흐물흐물 혼미해져서 내가 꿈의 세계로 안전히 도착할 때까지, 혹은 완전히 잠에 빠질 때까지 이 행위를 반복했다. 어느 날 나는 이불속에 몸을 파묻고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생각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전한 내 아지트 안에 있어도 하루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불청객들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나 스스로 나름 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이성적인 사람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라 순간 목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온몸의 털들이 곤두설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해. 너는 지금 공포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거야. 저 공포는 네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 실제로 너를 해칠 수 없어. 그러니 좋아하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생각을 전환해보자.”
나는 보통 어두운 곳에 가면 이런 이성적인 말들을 스스로에게 했다. ‘난 결코 어둠이 무섭지 않아. 어둠에게 지지 않겠어!’ 조금은 오버스럽지만 순간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창피한 말들도 서슴지 않고 스스로에게 했다. 하지만 이런 나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눈을 감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불안했다. 눈을 감으면 마치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분명 너무나도 안전한 내 방, 내 침대 안에 누워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순간 가차 없이 어디론가로 휙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로, 또 미래의 나로 사라져 버릴까 봐. 내가 눈을 감으면 어느새 나는 그곳들로 간다. 내가 상처 받았던, 힘들었던 과거의 순간들로. 또 나는 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내가 미처 막지 못할 순간들로. 나는 내가 지금 누워있는 내 아지트에서 조용히 사라져 그 순간들로 사라져 버릴까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방의 불이 꺼지고 방안에 가라앉는 어둠 속에서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깨어있는 내 감정들과 마주했다. 내가 어느 순간 의식을 잃을 때까지.
세상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자기 전에 느끼는 이 감정에 비하면 오히려 죽음 그 자체는 더 평온할지도 모른다는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나는 내가 죽는 순간 눈을 감으면 ‘이것으로 나는 끝이구나, 이제 난 비소로 자유로와졌어.'라고 느끼며 어느 정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눈을 감는 것이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로 느껴진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고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살며시 눈을 감아보았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죽음도 당해내지 못하는 내 두려움과 불안의 실체를. 그것은 바로 내가 눈을 감으면 나는 완전히, 그리고 완벽히 혼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눈을 감는 이 순간만큼은 난 지독하리만큼 철저히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누군가 또는 어떤 것이 옆에 있던 없든 간에 말이다. 안타깝게도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한 이 두려움은 오로지 온전한 내 몫이었다. 인간이 잠을 자는 것은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일이며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두렵다고, 싫다고, 거부한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의지의 문제가 아닌,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였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내가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혹 그렇게 믿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진 못해도 그저 받아들이자.’ 그리고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스타워즈의 요다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 머릿속에 작은 요다가 나타나 소리쳤다.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너의 머리가 네 발들이 놓인 침대 끝으로 가게끔 해보거라.”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확고한 두 눈으로 나를 꿰뚫어 보듯 쳐다보는 작은 요다에게서 순간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가족과 함께하는 성스러운 미사 시간에 언니와 동생과 입을 가리고 킥킥 웃으며 떠드는 우리들을 쳐다보시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눈빛으로만 호통을 치시는 능력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요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해보는 시늉이라도 하자'라는 식으로 그의 말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렸다.
‘자, 분명 내 머리는 이 폭신한 베개 위에 놓여 있는데.. 그런 내 머리를 어떤 마법이나 포스 없이 침대 끝으로 움직이는 것은... 이건... 불가능한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 작은 요다는 마치 내 머리통을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크게 소리쳤다.
‘포스는 존재한다고. 네안에도 포스가 있어. 그걸 이용하게나’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스타워즈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작은 요다의 말대로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숨겨진 포스들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내 머릿속의 작은 요다의 가르침에 따라 내 머리를 침대 끝으로 움직이는 것에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속으로 내 머리의 위치가 시작하기 전과 아주 눈곱만큼이라도 변했기를 간절히 바랐다. 작은 요다가 말했다.
‘그래. 이제 됐어. 눈을 뜨고 한번 확인해보게나.’
나는 최대한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그렇게 천천히 눈을 뜨면 조금이라도 내 머리의 위치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과연 나는 내 머리를 침대 끝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에 성공했을까?
아니.
안타깝게도 나는 작은 요다의 미션을 완전히, 완벽히 실패했다. 눈을 뜨자 나는 내 머리가 베개 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미션을 시작하기 전과 전혀 변함없이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섭섭하면서도 왠지 웃음이 났다. 그리곤 집중하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한 온몸의 근육들의 경직이 풀리면서 금세 나른함이 몰려왔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서서히 눈꺼풀이 감겨오는, 그런 기분 좋은 나른함.
어느새 눈을 떠보니 커튼 사이로 힘센 햇살이 레이저처럼 쏘아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간밤에 레이저가 관련된 꿈이라도 꿨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왠지 아주 오랜만에 맛있게 잠을 잘 자서 그런지 몸이 굉장히 가볍고 상쾌했다. 나는 창가로 걸어가 밤사이 굳건히 자신의 임무를 마친 훌륭한 커튼들을 걷어올렸다. 순간 눈이 멀 것같이 뜨겁고 밝은 햇살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내 머릿속에 작은 요다의 큰 외침이 들려왔다.
‘자네는 분명 어젯밤 자네의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고 실망하며 잠들었지. 분명 자네의 자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네. 그렇지만 자네는 내 미션을 통과했네. 왜냐하면 자네는 분명 변화했기 때문이지. 이제 자네는 더 이상 매일 밤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게 된 걸세. 그러니 절대 실망하지 말라고. 하하핫. 기억하게. 포스는 언제나 자네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다시 재빨리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이 작은 요다는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변했다는 것일까? 나는 어제 그 미션을 수행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미션에 통과하기 위해 마치 소원을 비는 듯 간절히 집중하는 모습. 나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면 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렵고 불안했던 내가, 어둠 속에서 몇 초, 몇 분, 아니 그 이상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우스꽝스러운 미션에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온몸에 힘이 풀려 어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스르르 잠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감격스러운 깨달음을 작은 요다에게 말하고 싶어 어떻게든 머릿속으로 그 요다를 소환하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 후로 그 작은 요다는 내 머릿속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마지막 말이 내 머릿속에 큰 종의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기억해, 포스는 언제나 자네와 함께 한다는 것을!
사람은 잠들기 전 눈을 감아야 한다. 그 어떠한 이유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고, 아프고, 힘들어서 나처럼 잠드는 순간까지 어떤 생각들과 감정들에 얽매여 괴로워하는 영혼들에게 나는 내 머릿속 작은 요다의 미션을 한번 해보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다. 우스꽝스럽고 이상할지라도 집중해서 하다 보면 그 순간 당신은 분명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현재 지금 이 순간에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실패율이 100%인 미션에 용기 있게 도전할 당신에게 마치 작은 요다가 그랬듯 말해주고 싶다.
“기억해, 포스는 언제나 자네와 함께 한다는 것을!”
평소 좋아하는 영화 스타워즈의 테마 중 John Williams의 Across the Stars 음악을 듣고 떠올린 스토리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저도 행복합니다. ^^ 멋진 영화들을 만들어준 조지 루카스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존 윌리엄스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ps: 대화 시리즈에 나오는 아인슈타인 님의 말투와 작은 요다의 말투가 닮았네요. 동일 인물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