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오늘의 노래: 개구장애의 엘도라도

by 이제은




시시포스는 꾀가 많은 것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욕심이 많고 속이기를 좋아했다. 여객과 방랑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그를 데리러 오자 오히려 타나토스를 잡아 족쇄를 채워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결국 전쟁의 신 아레스가 와서 타나토스를 구출하고 시시포스를 데려갔다. 하지만 시시포스는 죽기 전 꾀를 내어 아내에게 죽으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일러뒀었다. 그래서 저승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자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설득하기 위해 이승으로 다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코린토스에 가서는 저승에 돌아오기를 거부해, 나중에 헤르메스가 억지로 돌려보냈다. 그는 저승에서 벌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 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위키백과- 시시포스>




오랜 시간 동안 큰 돌을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며 시시포스는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그렇게 큰 돌을 밀어 올리며, 끝끝내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은 시시포스는 그 큰 돌을 내려놓은 순간, 무슨 기분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상상 속의 시시포스는 잠시 자신이 내려다 놓은 큰 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옥죄던, 매 순간 자신의 어깨를 으스러뜨리듯 짓누르던, 자신에게 끝나지 않는 고통과 괴로움, 부끄러움과 절망, 그리고 좌절과 분노를 선사한 돌덩어리. 마침내 그 돌덩어리에게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드니 그는 왠지 모르게 그 돌덩어리를 한번 쓰윽 쓰다듬었다. 아주 천천히.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 매 순간, 매일,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이 돌덩어리를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렸었다. 그 행위 속에서 그는 그동안 홀로 외로웠다고 생각했었는데, 믿었었는데 이 돌덩어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생각했다. 매 순간 자신과 함께 한 이 돌덩어리. 비록 자신에게 내려진 벌인 한낱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돌덩어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는 왠지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미워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던 이 돌덩어리와 그 긴 시간을 함께 했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쉬운 마음일까? 아니, 전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럼 시원 섭섭한 마음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뭔가 허전하고 허탈하기까지 한 이 기분. 그는 생각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드디어 벗어났는데, 그는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은 이 돌덩어리를 왜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설마 그는 그 돌덩어리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그 긴 시간, 찬란하면서도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태양 아래서도, 온 땅이 잠들어버린 얼음처럼 차가운 모래 위의 어둠 속에서도, 계절이 바뀌고 온 세상 만물이 변해도 자신과 함께 유일하게 변함없이 함께했던 돌덩어리. 참으로 희한한 감정이었다.


그는 매일 그 돌덩어리를 보면서 참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느꼈다. 한바탕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나면 그의 마음은 백지가 되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그저 돌을 밀어 올리는 행위만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곤 자신의 두발을 아래 펼쳐진 이 모래들을 보며 자신이 떠나온 어떤 곳을 기억하려고 애쓰곤 했다. 왠지 모르지만 그곳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기억 속의 작은 조각을 찾기 위해 그는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어느새 자신을 불태울 듯 내리쬐는 햇살도, 자신의 발아래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발을 쉽게 내빼지 못하게 술수를 쓰는 모래들도,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그는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렴풋한 그곳은 매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그곳이 존재했었다는 기억뿐. 허탈했다. 그러면 어느새 세상엔 어둠이 깔려있곤 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돌덩이를 밀어 올리며 자신이 떠나온 그 어떤 곳을 떠올리려고 애썼고 이런 날들을 매일 같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오늘 이 순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말없이 그 돌덩어리를 쓰다듬었다. 차갑고 둥글었다. 모난 곳 없이. 그리고 그는 홀린 듯 천천히 그 돌덩어리에게 자신의 귀를 가져다 데었다. 마치 그 돌덩어리의 속삼임이라도 들리듯이. 그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번엔 한참 동안 그 돌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돌덩어리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또 만져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돌덩어리 또한 자신이 떠나온 어떤 곳에서 함께 온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매일 자신이 기억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또 애쓰던 그곳은 바로 바다였다는 것을.



그는 언제 주웠는지 모르는 낡은 나침반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제 자유로운 양손을 이용해 그 나침반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바늘 두 개가 보였다. 이내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다시 나침반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닫고는 주머니에 살포시 넣었다. 그리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에서 모래를 탈탈 털어내고는 우뚝 일어서 그 길로 곧장 여행을 떠났다. 뒤돌아 보지 않고. 언젠가 분명 찾을 자신이 떠나온 그 빛나는 바다로.







혼자선 길의 주윌 봤어
황량한 사막 같은 여길
종일 걷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지쳐 잠이 들곤 하지

아무런 표정 없는 이들
말없이 나를 스쳐가고
남겨진 난 모래 속에
바다를 꿈꾸기도 해

수많은 언덕 사이에
갈 곳을 잃어버린 모습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가끔 내가 포기한 것들에
어설픈 잠을 뒤척이지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

<개구장애의 노래 엘도라도 중에서>





삶에서 지치고 외로운 순간마다 저에게 항상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던 개구장애의 '엘도라도'를 꼭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힐링 노래를 불러주신 장인진 님께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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