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퀼트에 푹 빠지신 엄마는 매번 영상통화를 할 때면 거실의 같은 자리에 앉으셔서 몇 시간이고 퀼트를 하셨다. 특히 엄마는 작은 것들을 만드시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셨다. 화면 너머로 살짝 보이는 그 작은 퀼트 인형들은 어딘가 살짝 홈메이드 느낌이 났다. 인터넷이나 상점에서 파는 인형들의 세련된 느낌이 아닌 홈메이드 느낌 말이다. 난 생각했다.
“엄마는 인형들이 좋으시면 그냥 인형들을 사시면 되는데... 왜 눈도 아프시고 시간도 많이 드는 퀼트 인형들을 만드시는 걸까? 오히려 그 시간에 엄마를 위한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난 속으로 궁시렁대며 엄마가 오랜 시간 퀼트를 하시다가 혹시 눈이나 몸에 무리라도 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엄마를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엄마의 고집을 감히 꺾을 수 없으며 엄마가 한번 시작하신 일은 엄마 스스로가 멈추실 때까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엄마는 매해 여러 퀼트 작품들을 탄생시키셨다. 열쇠고리를 위한 노란 기타 모양 인형과 부엉이 인형, 잘 때 차가워질 수 있는 배를 보호해주는 넙적한 하마 형제 인형들, 가족 구성원들의 집을 지키는 듬직한 닥스훈트 인형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인형들이 우리 가족의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각자의 맡은 역할들을 충실하게 해내었다. 특히 동생 J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인형들은 생긴 것이 별로 호감이 가지 않게 생긴, 어떻게 보면 조금 많이 못생긴 이란성 불독 형제 인형들이었다. 특히 그중 한 명은 조금 더 많이 못생겼다. 손바닥 만한 작은 크기의 그 형제들은 나름 데님 느낌의 천으로 만든 멜빵바지들을 입고 있었고 버클 대신 단추들도 몇 개씩 달고 있었다.
가장 희한하면서도 엄마가 제일 공을 들이신 부분은 그 불독 형제들의 얼굴들이었다. 불독 특유의 약간 심술 난 하지만 귀여운 느낌을 표현하시기 위해 엄마는 수염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염이 있어도 이 형제들에게 왠지 정이 가지 않았다. 엄마 본인도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그 형제들을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갔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생각보다 그렇게 예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불독 형제들을 동생 J는 우리 집에 데려왔다. 그리고는 그 형제들에게 나름 도그(dog)와 도기(doggy)라는 이름들까지 지어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조금 못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좋아해 주지 않는 애들을 더 이뻐해주고 싶어. 왠지 더 정이 가.
그날부터 도그와 도기 형제들은 우리 집 거실 티비 앞, 볕이 잘 드는 곳에 위풍당당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처음엔 거실에 있는 것도 내가 나름 양보한 건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제들 나름대로 아기자기 한 모습들이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 J는 어느새 우리 집 거실 한편을 메우고 있는 엄마의 작은 퀼트 인형들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쩔 땐 심심하면 인사도 한다. 또 마음이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그 인형들 중 하나를 꼭 껴안아 준다. 그렇게 하면 왠지 기분이 좀 나아진다. 왜 그런 것일까?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가 퀼트에 쏟아부으신 그 많은 시간들을 떠올랐다. 이 인형들 하나하나가 엄마의 시간과 영혼의 조각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손길로 담겨서 탄생된 것이 아닐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의 작품들.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란 존재처럼 말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위로한다는 응원의 메시지. 이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를 담은 그 퀼트 인형들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 예쁘다, 괜찮다. 불완전한 나라는 인간도 그냥 있는 그대로 예쁘다, 괜찮다 말해주는 듯. 우린 우리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며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스스로도 마음의 눈으로 보아주어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자세히 보아야 예쁨도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지금 마음이 너무 지치고 괴롭다면 스스로를 위한 퀼트인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퀼트인형들을 안아줄 때마다 느낀다. 이 생명력도 없고 어딘가 손보면 분명 더 나아질지도 모르게 생긴 인형들. 아주 약간은 엉성한, 그래서 왠지 더 정이 가는 이 인형들은 신비롭게도 나의 가슴에 대고 속삭인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엉성해 보여도 괜찮아. 나는 네가 매일 들인 시간과 노력을 다 알고 있어. 혹 네 일이, 네 영혼이 불완전할 지라도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가 왜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인형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셨는지. 사랑한다는, 힘내라는, 괜찮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이 인형들은 외롭고 지친 나를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준다. 마치 엄마의 따뜻한 손길처럼. 그리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 몇번이고.
세상엔 절약해서 좋은 것들도 많다. 물, 전기, 종이 등등. 하지만 어떤 것들은 절약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것들이 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 내 이웃을 향한 사랑. 우리 스스로를 위한 사랑. 우리는 매 순간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고귀하고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두려움 없이, 그저 사랑하면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