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들 중에 결혼한 친구들은 꽤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기까지 있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우리 부부도 아기 문제 때문에 초조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초 한 친구가 30대 끝자락에서 출산을 하면서 어쩐지 나도 이제 출산의 마지막 기로에 섰다는 기분이 들었다. 깊이 묻어 두고 모른 척하고 있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해야 할 시기가 코앞에 찾아온 것이다.
결혼한 지 근 10년이 됐으면서도 아직도 아기를 가지려는 노력조차 안 한 우리 부부는 딩크를 원하는 커플도, 그렇다고 출산을 원하는 커플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아기는 결정하지 않은 문제였다. 정확히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 우리 둘이 살 자가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는 건 무모한 도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부자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아기를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아기를 낳는 건 어찌 보면 다 함께 나락으로 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결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아기를 간절히 원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걸 희생하고 강인한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기에 대한 우리 부부의 열정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어릴 땐 언젠가 우리 상황도 아기를 낳을 정도로 여유로워지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결혼 후 한 5년쯤 후에는 향후 10년 정도만이라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여겼지만, 현실은 10년이 가까이 돼도 우리 상황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나이만 먹은 이 시점에 이르자 내 마음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감정이 이성을 잘 따라와 준 덕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비출산 부부로 살았다. 안전망이 없는 사람은 늘 리스크가 적은 선택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 전, 산부인과 검진에서 그리 좋지 않은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증상은 없어 별다른 치료는 받지 않았지만, 이제는 임신 여부를 결정해야 할 기로라는 것에 의사도 동의했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건강 때문에 아기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있지도 않은 자식을 강제로 빼앗긴 것처럼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만 끌다가는 출산도 못하고 자발적 딩크도 되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이제 정말로 자발적 딩크가 될 것이냐, 아니면 힘든 부모의 길에 안전망도 없이 뛰어들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돼 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출산에 있어서 초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실은 마음속 깊이 나도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프리랜서보다는 회사에 소속되고 싶었고, 무리해서 아기를 낳고 싶진 않지만, 아기를 낳아도 무리가 되지 않는 환경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자식이 생기면 불굴의 의지가 생겨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따라서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든다. 그건 성공 케이스일 뿐. 침묵하는 가정 중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을까?
이런 시점까지 왔음에도 성공 케이스만 보고 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딩크가 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나는 아기를 낳는 상상을 종종 해 본다. 그러나 아직도 내게 준비되지 않은 출산은 안전망 없이 공중 곡예를 하는 것 같다. 성공하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조금만 실수하거나 계획이 틀어지면 곧바로 나락인. 딩크든 출산이든 선택을 내린 다른 부부들이 부러워지는 우리 부부는 여전히 in-betwee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