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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Jan 22. 2022

007. 코스타리카 경찰한테 잡혀 억류된 동생 구하기

#라이언일병대신 #내동생구하기 #근데경찰이랑은왜싸웠어


"야 나 이번에 브런치 작가 됐다"

"어 봤어"

"그래서 말인데 그때 너 국경 경찰한테 잡혔던 거 써도 되냐"

"어 그래"

"별로 감흥이 없냐"

"뭐 쓰고 싶음 써"

"이거 또 은근 기대하는 거 아냐? 굉장한 관종이구만!"

"...(침묵)"




오늘은 내 이야기보다는 내 남동생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네 남매의 첫째로, 밑으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둘이 있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어도 넷 모두 각기 성격이 다른데, 오늘 주인공이 될 둘째 남동생은 그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말썽 부리지 않는 자식이다. 물론 그 넷 중 가장 트러블 메이커는 바로 나다.


이 둘째 동생은 과묵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웬만해서는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내가 까불거리면서 약 올려도 -_- 딱 이 표정으로 쓱 쳐다보고 나서 자기 할 일 하고, 말수가 적어 딱 필요한 말만 한다. 평소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딱 초반에 잘라내고 제 갈길 가는 스타일이랄까? 대충 상상이 가시는지. 조용하지만 생각이 깊고, 말수가 적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다툼이나 문제에 연루되기 전에 행동과 말을 조심하는 세심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은 그런 내 동생이 코스타리카-니카라과 육로 국경에서 국경 경찰한테 잡혀 억류되었던 이야기다. 심지어 내가 구하러 갔을 때 본 내 동생이 평소처럼 침착하고 과묵한 모습이 아니라, 경찰과 싸우고 씩씩거리고 있던 모습에 나마저도 깜짝 놀랐던 이야기. 


아니 내 동생이 경찰한테 잡힌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싸우고 있어...? 




이 이야기에는 지난번 코스타리카에 놀러 왔다가 첩첩산중에서 차를 밀어야 했던 내 미국 친구도 등장한다. 일곱 개의 이야기 중 벌써 두 번째 등장이라니, 내 고생담에 30% 정도는 지분이 있는 친구다. 


미국에서는 친구가, 니카라과에서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둘째 셋째 동생들이 놀러 오기로 했다. 하숙집에 살 때라 아주머니한테 미리 말씀드려 방을 세 개 더 빌렸다. 항상 혼자 있다가 방학철이 되며 친구와 동생들이 놀러 온다니 기분이 들떴다. 먼저 동생들이 코스타리카에 도착했다. 함께 바다도 가고, 워터파크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미국에서 친구가 도착했다. 거기서부터 내 계획은 니카라과로 다 같이 육로로 내려가서 동생들을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미국 친구와는 니카라과에서 국내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니카라과 육로로 내려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코스타리카에서 빌린 차는 니카라과 & 코스타리카 양 국가에서 탈 수 있도록 통행 허가 서류처리가 되어 있어서, 코스타리카에서 출발하여 니카라과까지 도착하기에 문제가 없는 차였다. 국도를 타고 국경까지 가서, 각자 입출국 신고를 하고, 자동차에 대해서도 간단한 수속을 밟기만 하면 되니 계획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계획이 계획대로만 되면 거 참 재미없지. 문제는 국경에 도착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출발했으니 먼저 코스타리카 이민청에서 출국신고를 하고, 자동차에 대해서도 출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나, 미국에서 온 친구, 내 남동생, 내 여동생까지 모두 출국 심사를 마쳤다. 문제는 차량에 있었다. 그 차의 통행허가증이 만료되어, 법적으로는 코스타리카에서 통행할 수 없는 차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코스타리카에서 운전했던 모든 기간에 대해 불법 통행으로 간주하여 그에 대한 벌금을 내야 했다. 벌금만 내고 지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에 대한 수속이 복잡하여 그날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덩치가 아닌 훨씬 복잡한 문제로 변모했다. 통행허가증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최대 6개월 통행 허가 가능이라는 문구만 보고 실제 3개월 통행허가증이라는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



코스타리카 교통청에서 바로 차를 압수했다.

교통청에서는 차 번호판을 떼고, 압수 딱지를 붙인 뒤 직접 운전해 차를 차고지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내가 서류처리를 하는 사이 남동생이 차고지까지의 길을 안내해줄 교통청 직원 한 명과 함께 차고지에 다녀오기로 했다. 교통청 직원이 먼저 운전해가고, 내 동생이 그 뒤로 차를 운전해 따라갔다. 벌금 문제, 차 반환 문제 등 복잡한 서류처리를 끝낸 후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셋째 동생이 물었다.


"오빠 왜 안 와?"

"아까 그 직원 차 타고 곧 오겠지"


그때 함께 갔던 교통청 직원이 차를 몰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혼자 내렸다. 


"왜 혼자 오세요? 제 동생은요?"

"내가 내 차 타고 같이 가자고 하니까 걸어오겠다던데?"

"그래서 걸어오고 있다고요? 차고지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요?"

"한 2-3km 정도?, 나도 몇 번이고 권했는데 괜찮다고 걸어오겠다고 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나라나 국경 주위는 위험하다

특히 중남미 나라 간의 국경 주위는 더더욱 위험하다. 2-3km라면 얼마 되지 않는 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 눈에 띄는 외모의 동양인 소년에게 무슨 일이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왜 혼자 걸어오겠다고 한 거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동생과 친구에게는 거기 있으라고 하고 큰길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았다. 국경 근처에는 살인사건도, 강도사건도, 인신매매도 흔하다. 내 동생이 그런 곳에 여권도 없이 돈 한 푼도 없이 걸어오고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다행히 바로 택시가 잡혔다


"차고지 쪽으로 천천히 서행해주세요!"

"어서 오세요~ 어? 너도 동양인이네?" 

"네? 또 보셨어요?"

"나 오면서 동양인이 경찰이랑 싸우는 거 보는데 웃겨가지고, 근데 너도 동양인이네?"


동양인이 드문 이 중남미 나라에, 그것도 국경에 동양인이라고?

틀림없이 내 동생이다! (근데 걔가 누구랑 싸울 애가 아닌데...)


"걔 제 동생이에요! 그쪽으로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몇 분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경찰한테 붙잡힌 내 동생이 보였다. 아,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 것은 씩씩대고 있는 국경 (코스타리카 측) 경찰과 내 동생. 대체 이게 무슨 분위기인지.



"너 괜찮아!? 무슨 일 없었어? 왜 혼자 걸어온다고 했어 괜찮아?"

"Eres su hermana?" (너 얘 가족이야?)

"Si, buenas tardes señor" (네 안녕하세요 경찰관님. 맞습니다)

"Tiene su pasaporte?" (얘 여권 가지고 있어?)

"Si señor, aqui tiene" (네 경찰관님, 여기 있습니다)


내가 건네준 동생의 여권을 잠시 들여다보던 경찰관이 말했다


"Eso es todo, ya puedes ir" (됐어 이제 가도 돼)


여권을 돌려받고, 동생을 데리고 아까 그 택시에 탔다

택시에 타서야 동생한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 애초에 왜 걸어오겠다고 한 거야?"

"혹시라도 괜히 차 얻어 탔다가 그걸로 꼬투리 잡을까 봐..."


그랬다. 니카라과에서 온 내 동생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에 익숙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호의 인척 포장하다가 금세 얼굴을 바꿔 꼬투리 잡아 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는 나라, 니카라과. 그러다 보니 혹시라도 태워다 주겠다는 말이 호의나 선의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것을 대가로 바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걸어오겠다고 한 것이다. 2-3km 정도 태워주고 나서 그 호의를 빌미 삼아 뒷돈을 요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무원 차에 탑승'이라는 자체가 앞으로 진행될 압수차량 반환 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차에 탈 수 없었더란다. 어떤 문제가 될지 모르니 여지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걸어오겠다고 했단다. 


내가 미리 돈을 주고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거나, 여기는 니카라과와는 다르니 차를 타고 오는 것 정도는 괜찮다거나 이야기를 해주면 좋았을 텐데. 동생한테는 코스타리카가 낯선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2-3km 정도 걷는 것 괜찮아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그런데 왜 경찰이랑 있었던 거야?"

"경찰이랑 있던 게 아니라 잡힌 거야. 걸어오다가 잡혀서 여권 보여달라고 하는데 나한테 여권이 없어서"

"그럼 그건 이해가 가는데, 싸우긴 왜 싸운 거야?"


"아니 자꾸 chinito (중국 놈)이라고 하면서 인종차별적으로 욕하잖아"



잠깐 차고지에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한 동생은 여권을 가져가지 않았고, 결국 국경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억류되었던 동생에게 경찰이 함부로 대한 모양이었다. 사실 많은 중남미 사람들이 동양인 들을 보고 스페인어를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함부로 대할 때가 있다. 동양인을 보고 스페인어를 못하겠거니 생각하는 선입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욕을 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동생에게 중국 놈이라고 부르며 욕하고 인격모독적인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는 그 경찰관의 뒤통수를 한대 후리고 싶다가도,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이 국경에서, 그나마 경찰을 만나 보호 아닌 보호를 받았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여권 없으면 체포하겠다길래 그러라고 했지"

"... 설마 정말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

"그랬는데?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수갑 흔들면서 말하길래 빨리 체포하라고 손목도 내밀었는데 당황해하면서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막 뱉었는데, 그 동양인 남자아이가 유창한 스페인어로 대답했으니 경찰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괜히 겁주겠다고 수갑 흔들면서 말 한번 잘못했다가, 까딱하면 외교적 문제로도 일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에 딱 맞춰 내가 나타났으니 경찰관 입장에서는 내가 고마웠겠지. 어쩐지 여권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충 훑어보다가 빨리 가라고 손짓하더라니. 그제야 전후 상황을 파악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네가 다른 사람이랑 싸울 줄도 아냐? 웬일이래, 맨날 그냥 고분고분 넘어가는 애가?


동생이 위험한 상황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같이 돌아오는 택시에 탄 순간까지,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가팔랐다. 긴장감과 공포, 두려움 걱정, 안도감과 잠시의 평화, 감사함, 인종차별주의자 경찰을 만나고도 당당하게 행동한 동생에 대한 기특함과 그 패기에 대한 웃음까지. 차는 압수당했지만 뭐 어때, 내 동생이 무사한데, 그거면 됐지.




결국 자동차는 압수당하고, 국경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는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각자 짐을 한가득씩 짊어지고, 매연을 뿜는 자동차들 사이를 한참을 걸어 모래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니카라과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갈 때는 어느 시점부터 국경을 넘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발로 직접 걸어 국경을 넘는 것은 그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으니 또 그 나름의 낭만이 있다. 나에게는 낭만이었지만 내 실수로 갑자기 무거운 짐을 든 채로 한참 걸어야 했던 내 compañeros de viaje (길동무)들에게는 그저 지독한 고생담 일 뿐이었겠지 싶어 배시시 웃음이 난다. 거 참 다들 수고들 많았소.


니카라과 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인근 국경마을까지 갔다. 거기서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아빠 차에 타고나서야 아, 오늘 고생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반환 수속 때문에 얼마 안 있어 다시 국경으로 돌아와야겠지만, 어쨌든 오늘 분량의 고생은 다 채운 것이다. 대부분의 내 이야기들이 그렇지만, 과정은 고생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항상 별일 없었으니, 그날도 좋은 날이었다. 국경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내 동생한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아무 일 없었으니, 그 자체로 감사가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어떤 부정적인 일을 겪는 그 순간에는, 그게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 상황 자체를 미워하게 되고, 그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내 결정들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나고 난 후에는 그렇게 커 보였던 문제가 별 것 아니었던 일로 하나의 점으로 작게 사라져 가는 것을 경험한다. 아니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의 나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까지 당신들께 들려드린, 그리고 앞으로 들려드릴 많은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나의 고생담이다. 험한 말로 쌔빠지게 고생하고 겹친 불운에 농락당하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웃으며 들려드릴 수 있는 이유는 그게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없고, 이제는 오히려 추억 삼아, 이야깃거리 삼아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그것을 더 이상 나의 힘들었던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고,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기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들 중 지금 당장 거대해 보이는 문제에 직면하신 분들이나, 내 감정을 쏙쏙 소모하는 개인적인 문제에 속상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미래의 당신은 그 일들을 이미 지나간 하나의 작은 점으로 남을 것과, 그 일들을 통해 더 단단해진 스스로를 마주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같은 문제나 사건에 대해서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고, 무엇보다 선택권이 당신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기를!


참 별거 아닌 사람이 여담이 길었다.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지혜로운 당신들이 살아갈 오늘과 내일과 또 그다음날들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007. 코스타리카 경찰한테 잡혀 억류된 동생 구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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