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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Feb 01. 2022

010. 스페인어 실수담 모음 1편

#내가스페인어를못하지 #말을못하냐 #스페인어실수경험담


중남미 생활 N년차, 나에게는 한국어 영어 다음으로 제3의 언어인 스페인어도 어느덧 많이 익숙해졌다.

심지어 한국어로 대체하기 어려운 몇몇 단어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말할 정도로 언어 자체가 편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나도 처음부터 스페인어를 잘하지는 못했다.

가끔 한국분들 중에 스페인어를 1년 안에 마스터하시는 언어에 재능이 있으신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1년 차에도 말을 더듬었다. 오히려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귀가 틔이고 3년 차가 넘어서야 말이 트였으니 많이 늦은셈이다


이렇게 스페인어를 구사하기까지 많은 실수들이 있었다. 


오늘 이야기는 내가 한창 스페인어에 낯가릴 때 있었던 크고 작은 실수담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었던 나의 토마토 실수담 다섯 개를 소개한다




Episode 01. 그러게, 여기 멍청이들이 많네


니카라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야기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 소리가 들리고, 비에 젖은 풀냄새가 물씬 나는 이른 오후였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되어 해 없이 적당히 어두운 교실에 앉아있자니 축 늘어져 나른했다. 그날 오후 따로 수업은 없고, 다가올 졸업파티를 계획하는 학급회의 시간이었다. 어떤 술을 살 것인가에 대한 의미 없는 토론을 보고 있자니 한층 더 지루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했다


"aqui hay muchas babosas (여기 멍청이들 많다)"


그 말을 들은 내가 주변을 쓱 둘러보고, 럼인가 보드카 인가로 싸우고 있는 목소리 큰 애들을 쳐다보다가 대꾸했다


"si cierto, hay muchas babosas (그러게 멍청이들이 많네)"


그러자 친구가 나와 내가 쳐다보던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해했다는 표정이 얼굴을 쓱 스치더니 폭소했다. 아니 왜?


"내가 말한 건 쟤네들이 아니라 babosas, 그러니까 민달팽이들 말한 거야"



비가 오는 오후 교실 벽에는 껍질 없는 민달팽이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꼼지락꼼지락 기어가는 민달팽이들을 보고 내 친구는 야~요 민달팽이들 봐라~하고 한말에 내가 그래 다 멍청이들이다라고 대꾸한 것이다


변명하자면 멍청이를 뜻하는 baboso의 여성형&복수형이 babosas, 즉 민달팽이와 같은 단어라 친구는 민달팽이라는 의미로 한 babosas라는 단어를 나는 멍청이들이라고 이해해서 난 사달. (아이 부끄러워!)

눈앞에 보이는 게 어떤 술이 제일이냐고 싸우는 덩치 큰 멍청이들이라 덩치 작은 민달팽이들은 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마침 이야기하고 있던 친구들이 다 여자애들이라, 멍청이를 여성형으로 babosas라고 이야기 한 줄 알았지


깔깔 웃는 친구 옆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나, 그리고 영문 모르고 우릴 쳐다보는 반 친구들 앞으로 민달팽이는 열심히 기어갔다. 엉금엉금


귀여운 민달팽이




Episode 02.  카페에서 랍스터 시킨 사연


때는 중학생이었던 시절, 일요일 한인교회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다 같이 니카라과에 하나밖에 없는 백화점으로 몰려갔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짧은 주말 어디라도 가고 싶었던 우리에게 몇 개 없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주말만 되면 이 백화점에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내 현지 친구 중 한 명은 이를 니카라과 한인 침략이라고 불렀다.


백화점 1층에는 Casa de Cafe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우리의 주된 루트는 이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음료수를 마시다가, 2층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푸드코드에 가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의 일요일 오후와 같이 클럽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프룻펀치를 마시며 동생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덧 영화 시간이 다되어 이제 가자며 웨이터를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이야기하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내가 단어를 헷갈렸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la cuenta por favor (라꾸엔따-계산서/계산서 갖다 주세요)"


인데, 막상 내 입에서 나온 말은,

"langosta, por favor (랑고스따-랍스터/랍스터 갖다 주세요)"


웨이터가 영문 모르고 서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no ofrecemos ese tipo de cosas aqui (여기서는 그런 건 안 파는데요)"


사실 이쯤 되면 뭔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나는 이때까지도 왜 계산서를 갖다 달라는데 그런 걸 안 판다고 하는 건지 심통이나 되물었다


"como que no ofrece langosta? (랍스터를 안 판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때서야 동생이 말했다. 어, 랑고스따가 아니라 라꾸엔따아니야?

어머어머 얘는 그걸 왜 이야기하니


웨이터한테 몇 번이나 사과하고 나서 계산서 (라-꾸-엔-따!) 를 부탁했다

계산서에 팁을 얹어준 건 보너스. 


거 참 미안하게 됐수다, 스페인어 못하는 동양인이려니 하시오





Episode. 03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이 이야기는 처음 니카라과에 도착해서 몇 달 안되었을 때의 이야기

현지인 과외 선생님이 매일 집으로 와 스페인어를 가르쳐주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라 단어를 두꺼운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보며 단어들을 배웠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어와 발음이 비슷하거나, 아니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이거 아냐? 싶은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도 때려 맞췄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단어들이 있었다:


스페인어: Pan 빤 한국어: 빵

스페인어: La cucaracha 라 쿠카라차 한국어: 바퀴벌레


빵처럼 스페인어와 한국어 발음이 거의 흡사해 바로 이해한 단어도 있었고, 라 쿠카라차처럼 어디선가 노래와 함께 바퀴벌레 애니메이션을 보고 바퀴벌레겠거니 하고 바로 맞춘 단어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새로 배운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Tumba 뚬바


혹시 이 단어를 보고 어떤 것이 연상되시는지, 나는 듣자마자 왠지 신이 났다

뚬바둠바 두비둠바 두비두비뚜비뚬바 어디선가 이런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아, 흥의 민족인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고 일어나 뚜비뚬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리고 서투른 스페인어로 말했다


"tumba! samba! yo bailar tumba! (뚬바! 쌈바! 나는 뚬바 춤을 추다!)"


과외선생님은 굉장히 인자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었는데, 어떤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고 부처님 미소를 지으며 스페인어를 가르쳐주셨다. 그날도 신난 내게 차분히 앉아보라고 하신 후 손수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보여주셨다.



젠장, 뚬바는 그 어감과는 다르게 쌈바같은 흥의 단어가 아니었다

뚬바는 무덤이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게 무덤에서 춤을 추겠다고 했다. 

의도치 않게 그 짧은 스페인어로 꽤 높은 수위의 무례를 저지르는 것도 재주다.

재주꾼은 열심히 선생님께 사과했다. 그게 그 뜻인지 몰랐다고, 나는 쌈바같은건 줄 알았다고.


과외선생님은 또 부처님 미소로 웃었다


( ̄︶ ̄*) 

"괜찮아... 원하면 내 무덤에서 춤춰도 돼... 죽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줄게..."




Episode. 04 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이건 스페인어는 아니고 영어로 실수했던 이야기

영어든 스페인어든 언어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문맥을 읽을 줄 몰라 한 단어 단어에 민감했다.

친구들이랑 다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물론 나는 주로 청취자...) 그중 친구 하나가 나한테 피곤해 보인다며 몇 시에 잤냐고 물었다


"나 어제 새벽 세시에 잤어"

"어쩐지 피곤해 보이더라!"

"fuck! that's insane! (오 시 X 미쳤네)"


영어도 귀가 잘 트이지 않은 때라 친구들이 뭐라고 하는지도 대충 감으로 때려 맞추는 와중에도 한 남자애가 한 fuck이라는 단어는 선명히 들렸다. 굳이 따지자면 나한테 욕한 게 아니라 새벽 세시에 잤다는 사실에 (우리는 6시 30분쯤까지 등교했다) '오 왜 그렇게 늦게 잤니! (그 상황이) 미쳤구나!'라는 말이었지만 동양인 언어 짬찌는 fuck이라는 단어에 놀라서 외쳤다


"did you fuck me! (야 너 나랑 XX 했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 나한테 시 x이라고 했냐!" 였는데 당시 내 짧은 영어 수준으로는 did you fuck me라는 짧은 문장이 한계였다. 문제는 그게 문장의 뜻 전체를 바꿔버렸다는 거지


"hey! don't fuck me! (야! 너 나랑 XX 할 생각하지 마라!)"


남자애는 어리둥절해서 그게 아니라고 손짓 발짓해가면서 사과하고, 내 친한 친구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소성일... 그거 아니야...


나는 나대로 억울했다. 아니 쟤가 나보고 시 X이라잖아...


오해가 풀린 건 아주 훗날의 이야기

파우시리오.. 잘 지내니? 그때는 내가 미안했다... 내가 잘 몰랐어... 이젠 좀 안다...




Episode. 05 뭐래? 아침 준대?


이건 내 에피소드는 아니고 우리 엄마 이야기다. 

이번 가족여행 때 듣고 큭큭 웃으면서 언젠가 브런치에 써야지~하고 메모해놨던 에피소드 중 하나.


이번 가족여행으로 과테말라를 다녀왔는데, 과테말라에 먼저 와있던 엄마와 동생이 차를 타고 가다가 기름이 없어 주유소에 들렀다고 한다. 원래 살던 니카라과는 셀프주유소가 없는 반면, 그날 과테말라에서 들른 주유소는 셀프주유소였다고 한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우왕좌왕하던 엄마와 동생을 보고 옆에서 주유하던 아저씨가 물었다.


"les ayudo? (레스 아유도? - 도와줄까?)


그리고 우리 엄마는 레스아유도? (도와줄까?)를 이렇게 들으셨다고 한다


"desayuno? (데사유노-아침식사줄까?)"

"어머어머 ㅇㅇ아 (동생) 뭐라니? 데사유노? 아침식사 준다니? 왜?"


아니 엄마 지나가던 사람이 아침식사를 왜 줘요

줘도 드시면 안 돼요


뭐 어쨌든 결국 기름은 무사히 넣으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귀여운 분이시다

다음에 본가 가면 아침식사하러 맛있는 브런치 집에 같이 가야지




요새 내가 사는 곳은 비가 추적추적 온다

비가 오는 창문을 보고 있자니 민달팽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여러 실수담들을 모아 한 편의 브런치로 써보았다. 

어제의 실수는 오늘의 웃음이 된다. 어제의 부끄러움은 오늘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내 실수에 크게 개의치 않고, 유쾌함을 살아야겠다. 


나는 내 '행복한' 삶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010. 스페인어 실수담 모음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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