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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Aug 20. 2022

013. 한국 귀신은 소복을 입고, 중남미 귀신은,

#코스타리카에서 #렌트비안내는작은귀신과 #이년을산적이있어요

이 이야기는 브런치 작가가 된 후에 가장 먼저 쓰려고 했던 이야기면서도, 왠지 쉽사리 꺼내놓기가 쉽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귀신을 봤다고 해야 좋을지, 아니면 그냥 마음이 허해서 헛것을 봤다고 할지, 일종의 수면장애였던 것 같다고 해야 할지도 많이 고민했지만 그건 읽는 사람의 마음에 맡기기로 하고 나는 그냥 겪었던 일 그대로 풀어보기로 한다.


코스타리카에서 대학을 다녔던 내가 맨 처음에 살았던 곳은 외국인 여럿과 다 함께 살던 큰 주택이었는데,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살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많고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았다. 다만 방세가 저렴하고 학교와 교회가 가까워 그곳에 1년을 살았다.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된 건 브런치 첫 글로 소개했던 범죄자와 결혼할 뻔한 사건 이후였다.


범죄자와 결혼할 뻔 했던 그 사연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001. 코스타리카에서 지명수배자와 결혼을#1


학교와 교회가 가까우면서도 깨끗하고, 넓으면서 볕도 잘 들어야 하고, 가난한 대학생 신분이니 집세도 저렴해야 한다는 깐깐한 조건에 맞는 매물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습관처럼 매물 사이트를 켰던 내 눈앞에 그 집이 나타났다.


정확한 평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체감상 25평 정도? 방과 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위치도 좋았으며, 반지하이긴 했지만 구조가 좋았고 방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볕도 잘 들었다. 올라온 가격은 $600 USD.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집보다 2-300불가량은 더 저렴했다. 보자마자 전화를 걸어 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포함된 가구와 가전도 다 새것이었고, 리모델링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했다. 


이사를 하게 된 계기가 안전 때문이니, 안전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 집은 대문 하나는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단지 안에 있었는데, 이 단지 자체가 한 일가족이 모여 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대문 하나를 통과하면 오른쪽에는 첫째 딸이 남편과 셋째 아들과 함께 사는 큰 집이 하나 있었고, 왼쪽에는 막 결혼한 딸이 들어와 살기 위해 비워둔 집이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할머니가 사시는 작은 집이 있었고, 그 밑이 바로 내가 들어가 살 집이었다. 사실 이 집은 원래 해외에 사는 큰 아들이 들어와 살 집이었다는데 일이 생겨 귀국하지 못하게 돼 급하게 내놓은 집이라고 했다. 물세 전기세도 다 포함된 가격에, 신원이 확실한 이웃집들이라니, 오래 고민할 것 없이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짐을 옮겨왔다.


그곳에서 아이 귀신을 만난 건, 그 집에서 3개월 정도 살았던 시점이었다.


당시 나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는 학교를 갔다가 밤에는 다시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보니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밥도 대충 차려먹거나 혹은 먹지 않고 지쳐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늦게 퇴근해 전 날 끓여둔 찌개에 대충 밥을 말아 식탁에 앉아 TV를 보며 대충 입에 떠 넣고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살던 곳과 가장 비슷한 구조의 사진을 가져왔다

Photo by ZD NewMedia on Unsplash

나는 저 사진에 보이는 TV를 마주 보고 있는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TV 너머로는 방으로 연결되는 방문이 있었다. 방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무의식적으로 TV를 바라보는데 그 옆으로 기척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돌려 바라보니 키가 작은 아이가 방문 뒤에 숨어 얼굴과 상체만 빼꼼 내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면 살짝 뒤로 다시 숨었다가, TV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얼굴을 내밀고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놀라지도 않고 다만 피곤함에 절어 '저게 뭐야...?'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아이가 있었던가...'

우리 집에 아이가 있을 턱도 없고, 그렇다고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닐 테고, 아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다다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 마음에 두려움이 솟았다가, 관심을 바라면서도 수줍어하는 아이 같은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아 나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구나...'

그렇게 밥을 다 먹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아이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제대로 된 형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별생각 없이 씻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불을 끄고 자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결국 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


피곤에 절어 곤히 자던 내가 잠에서 깬 건 누가 내가 누운 자리 옆에서 방방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깨운 것은 침대 스프링의 탄성이었다. 

스프링이 눌렸다가 탄성에 의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며 잉잉 소리를 냈다.

내 코앞에서 뛰고 있는지 내 얼굴도 침대 매트리스를 따라 동동 떨렸다.

뛸 때마다 바람이 스치며 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차마 고개를 돌려 내 침대에서 뛰고 있었던 그것을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오감이 말했다. 

아까 봤던 그 아이가 내 침대에서 뛰고 있다고.


아이를 멀리서 흘낏흘낏 보는 것과, 내 눈앞에서 방방 뛰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방문 너머로 나를 빼꼼히 바라보는 것 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을지라도, 이렇게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느끼자 아, 등골이 오싹했다. 식은땀이 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내 몸의 신경이 모두 바짝 섰다.


그런데, 화도 났다.

누운 상태로 머리가 동동 울리는 것을 참다 보니 화가 났다.

나는 어, 내일 또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지금 쉬어야 하는데! 이 집 집세를 벌어와야 하는데!

집세도 안내는 아이 귀신 때문에 왜 내가 지금 잠도 못 자고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하는지. 

어른이 침대에서 주무시는데 아이가 와서 방방 뛴다니. 비록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귀신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예의와 예절이라는 것은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홱 일으켜 뛰지 말라고 할 요량으로 아이의 어깨를 확 눌러 잡았다.

정확히는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스프링 철 소리도, 매트리스의 떨림도, 아이도.


그래서 그냥 불 끄고 잤다. 

분명 무서웠지만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나의 피곤함을 이기기에는 부족했다.



그 후로는 아이를 그렇게 뚜렷이 느낄 일은 없었다.

가끔 빼꼼히 고개를 내밀 때는 있었지만, 피곤하다는 내 말을 잘 이해했는지 크게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헛것을 보나보다, 수면장애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아이의 존재를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1. 고용주님 


시청에서 해결해야 할 행정업무가 있어서 시청에 갔는데 빠진 부분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수정하고 제출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시청 근처에 있었던 우리 집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이사 중이라 집에 여기저기 이삿짐들이 늘어져있었다. 그것에 상관없이 고용주님은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느낌이 싸하다고 했다.


"성일아, 여기 집세가 얼마라고?"

"600불이에요. 전기세, 물세, 가스세도 다 포함이고요"

"왜 그렇게 저렴하지...? 근데 집이 참 차갑다... 느낌도 이상하고..."

"그래도 넓고 햇볕도 잘 들어요"

"그래 볕은 잘 드는데... 그냥 차갑고 싸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건 아는데 다른데 알아볼 생각은 없냐고.

그때는 월급 올려주시면 더 좋은 데 가죠~ 하고 말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 아빠


아빠가 코스타리카에 왔다.

자식 볼 겸, 사업 차 겸사겸사 오셨다는데 호텔 잡지 말고 우리 집이 넓으니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김치 돼지 찜을 해서 저녁을 먹고, 밀린 이야기도 도란도란하다가 시간이 늦어 아버지는 침대에서 주무시라고 하고 나는 에어매트리스에 이불을 깔아 방구석에서 잤다.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하는 말씀


"집에 동자님이 계시네~"

"동자님이요?"

"응 동자님을 봤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지만 아빠도 정확히 설명하시지 못하고 동자님이라고만 했다.

나는 그때까지 아빠한테 내가 그 집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이상한 일을 겪고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우리 외할머니도 오셨다가 남자아이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아무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아무도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집에 뭔가 있긴 했나 보다.




우리 집 위에는 할머니가 살았다.

할머니도 나이가 있어 가는귀가 먹었다.

덕분에 친구들이 놀러 와 밤새 마이크에 노래를 불러도, 아무것도 못 들었다며 누가 왔었냐며 되묻곤 했다.


"할머니, 엊그제 제 친구들이 놀러 와서 좀 시끄러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셨어요?"

"... 으응? 괜찮다... 아무것도 못 들었다..."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너무 시끄럽거나 하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으응.. 괜찮다.. 으응... 그런데 어제는 좀 시끄럽더구나... 아이들이 놀러 왔었니? 

까르르 까르르 웃고 뛰는 아이소리가 들리던데... 네 차도 없는데 언제 들어왔나 했지..."


"... 아니요 할머니 저 어제 교회에서 잤어요..."



한국귀신은 소복을 입고, 중남미 아이 귀신은, end

표지 크레딧: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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